대한민국의 주거 시장에서 가장 독특한 제도를 꼽으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세를 꼽을 것입니다. 바로 이 전세를 이해해야 지금의 시장 상황을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전세는 왜 생겼을까요? 왜 지금까진 문제가 없었을까요? 지금 와서는 왜 문제가 된다고 하는걸까요?
전세의 역사는 꽤 오래 전부터 있었다고 하지만, 실제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1970년대 고도 성장기였습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제공하는 월세에 비해 임대인은 목돈을 통해 더욱 강력한 수익을 거둘 수 있는 곳에 투자했습니다. 몇몇 “라떼 썰”로 도는 것과 같이 당시에는 이자율이 1~20%씩 하던 정기예금과 같은 상품이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IMF 외환위기를 겪고,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 위기(GFC, Global Financial Crisis)까지 겪으며 전세계는 성장 둔화를 직면하게 됩니다. 발전할 만큼 발전해서 더 이상 고도성장할 곳이 없었던거죠. 이런 상황 속에 어떻게 해서든 실체적 성장 없이 기업들을 회생시키기 위해 미국을 비롯해 각국은 시장에 돈을 풉니다. 있어보이는 말로 “유동성 완화 정책”입니다. 당시 FED 의장이었던 벤 버냉키의 「헬리콥터 머니」같은 정책 말이죠.
그러면 돈이 풀리고 금리가 하락하면 이제는 안정적인 고소득을 얻을 수 있던 전세는 의미가 없어지는걸까요? 불행히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 지금의 전세시장을 왜곡시킨 문제가 시작되었죠. 바로 갭 투기입니다.
갭 투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순환하는 경기 주기에 따라 어떻게 주택 시장이 영향을 받는지를 알아야 합니다1. 정확히는 경기에 따라 증감하는 유동성과 은행/정부의 정책 변화에 따라 달라지게 됩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유동성 공급이 필요해지는 경우, 금리는 하락하고 대출 규제는 완화되며 은행 역시 공격적인 대출 상품을 출시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돈을 구하기가 매우 쉬워지죠. 지금까지 이런 경우 상당량의 (가계) 대출은 주택 시장, 정확히는 수도권 아파트 시장으로 이어졌습니다.
대출이 쉬워지고 유동성 공급이 많아지면 수요가 증가하니까 (부동산을 포함한 자산의) 가격이 오르겠죠. 그 반대면 내려가겠고요. 하지만 이상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부동산은 우상향한다”, “부동산 불패”라는 말을 듣고 살았습니다. 그건 왜일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보통 우리가 경제가 성장한다, 혹은 좋아진다고 표현하는 말 속에는 숨어있는 의미를 이해해야 합니다.
경제가 성장한다는 말은 사회 전체가 만들어내는 자본이 증가한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죠. 결국 성장의 결과는 유동성의 증가라고 풀 수 있습니다. 이 수치가 빠르냐, 혹은 느리냐에 따라 경제가 과열인지 혹은 부진인지가 보인다는거죠. 미 연준에서는 2% 정도의 물가 상승률이 나타나면 ‘적절한 경제 성장으로 인해 유동성이 확대 공급 된다’고 해석합니다. 소위 말하는 「골디락스 경제2」죠.
그런데 재미있는건, 그 역도 적용했다는 것입니다. 다양한 경기 침체를 겪으며 각국 정부는 “성장이 안되면 인위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하면 시장에 활기가 돌지 않을까?”라고 생각했고, 위기시마다 벤이 한 것 처럼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했습니다. 당장 돈이 말라서 도산하기 직전의 기업들에겐 가뭄에 단비였으나, 이런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자산시장의 거품3은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필요한 성장에 비해 유동성이 너무 빨리 풀려버린거죠. 이것이 갭 투기를 낳은 첫 번째 배경입니다.
갭 투기가 활성화된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전세를 국가와 은행이 지원한 것입니다. 물론 전세 지원 정책 자체가 목돈을 모으기 힘든 청년층이나 신혼부부의 주거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나쁜 의도만을 가지고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만, 악용될 여지가 있었던거죠. 거기다 주택저당증권(MBS, Mortgage Backed Security)에 비해 원금 회수가 거의 안정적으로 진행되고, 정해진 이자수익을 얻을 수 있다 보니 은행권에서도 꽤나 환영할만한 정책이었습니다. 몇몇 사업에선 국가가 대출에 대해 지급보증까지 서 줬으니까요. 리스크 없이 수익만 거둘 수 있는 사업이었죠.
그래서 전세시장에는 계속 자금이 흘러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갭 투기도 더더욱 활성화되었습니다. 심한 경우엔 자기 자본 한 푼도 없이 집을 구매하는 경우도 나왔습니다.
위 그림을 가지고 갭 투기를 간략하게 설명해볼까요?
시세 10억의 집에 세입자가 전세 5억에 들어와 살고 있습니다. 이 집을 A가 5억을 주고 삽니다. 세입자가 나갈 때 A가 5억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A에겐 10억이 필요했지만, 사실상 5억을 빌린 것처럼 작동하게 됩니다.
주택 가격이 올랐습니다. 다음 세입자에겐 전세금 6억을 받고 임대를 해주게 됩니다. 그리고 5억을 돌려주면 1억이 남습니다. 원래대로라면 6억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다음 세입자는 반드시 6억+@를 내고 입주할 것이라는 믿음 속에, 남은 1억을 가지고 다시 시세 2억의 집을 구합니다. 여기에도 1억을 내고 입주한 전세 세입자가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A는 한푼 추가 지출 없이 2억원 주택이 한채 더 생긴 꼴입니다. 모두 세입자들에게 “전세금”이란 이름으로 돈을 빌린겁니다.
국가가 보증해주는 저리 전세 대출, 그리고 꾸준한 성장으로 우상향하는 주택가격, 지방이 붕괴되면서 수도권 일부 지역으로만 한없이 집중되는 주택 수요, 국가가 공급하기엔 부족한 중대형 주택 등 세입자는 이런 주택시장에 지속적으로 몰려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중대형 아파트 중심의 갭 투기도 점점 폭을 넓힙니다. 소형 아파트에서 빌라, 원룸에 이르기까지요. 상당수의 주택이 갭 투기자의 손에 들어가게 된 셈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주택가격이 계속 우상향할땐 아무 문제 없었습니다. 하지만 상승장이 멈추면 어떻게 될까요?
벌써부터 수도권 곳곳에서는 많은 사고 사례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2022년 1월~8월 사이 전세보증금반환보증 사고는 경기도와 서울에서 약 1700여건 발생했고, 인천에서만 640건 가량 발생4했습니다. 지난 8월 24일에는 약 1.4만건의 전세사기 의심 정보가 국토교통부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의해 조사된 바5 있고요. 2021년에 드러난 소위 '세 모녀 전세 사기’사건은 1년에 걸친 조사 끝에 피해액이 100억원에서 800억원대로 증가한 조사 결과가 발표6되기도 했습니다. 일부 컨설팅 업체가 명의대여를 통해 수천여채의 빌라에서 조직적으로 전세사기를 친 소위 ‘빌라왕’ 사건7 역시 저런 갭 투기 과정에서 고리 하나가 망가지면서 연쇄 대출이 망가진 사례입니다.
2022년에 본격화된 연준의 금리 인상은 사실 2021년 3분기 경부터 예고된 정책이었습니다. 한참 전부터 점도표를 통해 예고되기도 했고, COVID-19를 극복하기 위해 뿌렸던 유동성이 낳은 과도한 인플레이션을 줄이겠다고 강력한 선언을 수 차례에 걸쳐 반복하기도 했습니다. 실제 미국의 물가 상승률은 어마어마한 수준에 달했습니다. 전염병으로 인해 서비스 고용지표가 토막난 상황에서 물가까지 상승하는 것은 가계에 치명타를 가했고, 다양한 보조금 등을 주면서 전체적으로 경제에서 과열된 김을 빼는 정책을 필 것이라고 수 차례에 걸쳐 천명했었죠.
이런 상황에서 주택 가격 하락은 단순히 금리 인상과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 자산시장의 다운사이클에서 온 것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언론들은 “영끌해서 집 사도 만족8”과 같은 기사를 내면서 빨리 “다들 하니까” 집을 대출해서 사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사실과 달랐습니다. 2022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의 뒤에는 매입 대출이 아니라 전/월세 보증금9이었습니다. 과장된 몇몇 사례10가 반복해서 보도되면서 시장의 열기가 꺼지기 직전까지 땔감이 들어간 셈입니다.
그러면서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아 저연령층도 쉽게 갭 투기에 접근할 수 있던 몇몇 빌라 지구에서는 “청년이 청년을 등쳐먹는다11”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아파트보다 가격 방어가 더욱 불리해 가격 하락이 더욱 심각한 빌라의 특성때문에 문제는 더욱 증폭되었죠. 주택 하락장을 겪으며 전세라는 레버리지를 잔뜩 달고 있던 갭 투기의 취약점이 고스란히 노출된 셈입니다.
일각에서는 더 이상 미국도 버틸 수 없을 것이라며, 금리 상승분이 꺾인 것을 근거로 내년에는 다시 저금리 사회로 돌아갈 것이라는 희망섞인 말을 하며 부동산을 사라고 하는 자칭 전문가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금리는 사실상 후행지표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경제 상황이 변했고 물가가 변했기에 후행적으로 금융/통화 정책을 수행하는 것이 기준금리의 변동입니다.
시장은 결코 금리 변화에 맞춰 실시간으로 변동하지 않습니다. 실제 GFC 극복 과정에서 테이퍼링을 진행했을 때 냉기에는 시장이 매우 선제적으로 반응했습니다. 소위 ‘테이퍼 탠트럼12’이란 현상이죠. 하지만 정책의 온기에 시장은 그리 기민하게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는 몇 년 뒤에야 회복세를 보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2016년부터 있었던 경기회복입니다.
상편에서 전반적인 경제 상황을, 그리고 중편에서 전세의 뇌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다음 하편에서는 본격적으로 전세가 우리에게 가져다 줄 경제적 위기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좋은 밤 되세요.
전체적인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토연구원의 「유동성이 주택시장에 미치는 영향과 정책방안 연구」를 읽어보시면 더 좋습니다.
https://library.krihs.re.kr/dl_image2/IMG/07/000000033228/SERVICE/000000033228_01.PDF
골디락스 경제에 관련된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아래 미 의회의 자료를 참조해주세요.
https://www.jec.senate.gov/public/index.cfm/republicans/2018/9/the-fed-and-the-goldilocks-economy
“저금리의 경기 방어 역할이 어느 정도 달성됐으며, 더 지속할 경우 부작용이 커진다”
https://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1011724.html
“대부분 젊은 분양사, 중개사들이 건물 8~9층에 사무소를 차려놓고 사회초년생들을 사기 매물로 끌어들이는 것 같다. 청년이 청년에게 사기치는 동네가 됐다”
테이퍼 텐트럼은 이러한 테이퍼링이 시장에 충격이 돼 투자자들이 갑작스럽게 자금을 회수, 신흥국 통화가치나 증시가 급락하는 형태로 발작을 일으키는 것을 의미한다. 중앙은행이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시중에 유동성을 풀고난 이후 물가가 급등하게 되면 이를 낮추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 채권매입 규모 축소 등으로 다시 유동성을 거둬들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상승세를 보여왔던 시장이 하락세로 돌아설 것이라 우려한 투자자들은 위험회피 심리가 강화되고 리스크가 높은 신흥국에서 자금을 급격하게 뺀다. 여기서 발생한 충격을 테이퍼 텐트럼이라고 한다.
강원도지사가 야기한 채권시장의 위기가 국가적 경제위기로 커져가는 지금 부동산전세시장도 흔들리고있군요...좋은글 잘보고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