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윤석열정부는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열었습니다. ‘자화자찬으로 끝났다’는 평가도 있고, ‘화기애애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그런 평가를 모두 빼내고 순수하게 부동산 정책에 대해 이야기 한 내용만 추리면 크게 아래 5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중도금 기준을 9억에서 12억으로 완화
무주택/1주택자 LTV를 40%에서 50%로 완화
15억 이상 주택에 주택담보대출 허용
부분 2주택자 주택 처분 기간을 6개월에서 2년으로 완화
투기과열지구/조정지역 추가 해제
정책만 놓고보면 ‘아 일단 부동산 규제를 푸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이 뒤에 있는 내용들을 보면 조금 더 섬뜩해집니다. 여기서 생각해야 할 점은 1. 거시적 관점과 2. 미시적 관점입니다. 공통점은 모두 ‘일시적인 연기’일뿐, 근본 대책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거시적 관점은 한국의 부채 구조입니다. 현재 김진태 레고랜드 임의 부도 사건으로 인해 가장 직접적인 문제를 겪고 있는 것은 건설사입니다.
거시적 관점 : 둔촌주공에 투입된 채안펀드, 과연 아무 문제 없을까?
채권시장안정펀드는 가동 첫 주에 겨우 3,000억원 정도의 채권 매입에 그쳤습니다. 둔촌주공은 겉으로 보면 NH농협은행 등 24개 금융사로 구성된 대주단1이 발행했던 7,000억 규모의 ABSTB(Asset-Backed Short Term Bond, 자산 담보부 단기채)를 채안펀드를 통해 상환한 것2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사정이 좀 다릅니다.
실제로 채안펀드의 현재 가용 재원은 1.6조이며, 하위 펀드에 5,000억을 집행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리고 채안펀드는 3,000억 집행에 그쳤습니다. 매입 기준이 신용등급 A1 이상이라 둔촌주공 시공단 4사 중 유일하게 현대건설 물량만 사들이게 된3겁니다.
실제 이렇게 정리된 현대건설은 7% 정도에 채권을 차환하였으나 나머지 시공단인 대우건설과 롯데건설, HDC 현대산업개발은 채권 차환에 12%에 달하는 금리를 두드려맞은 뒤4에야 겨우 차환을 할 수 있었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강남권 우량 사업장인 만큼 1월 예정인 일반 분양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 여기까지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유동성이 급격하게 시장에 풀린다기보다 단순히 빚의 차환이라서, 금융비용만 증가할 뿐 유통되는 돈의 총량 자체가 변화하진 않거든요. 하지만 생각해봐야 할 것은 이 차환이 결국 ‘강남 사업장이니 분양이 우량할 것’이라는 믿음에 근거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청약이 흥행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청약이 흥행하지 못해서 회수가 덜 되면, 가뜩이나 비싼 금융 비용을 물고 있는 상황에서 건설사들은 채무 이행하는데 별도의 그룹 자금을 끌어쓰거나, 혹은 최악의 경우 채무불이행을 선언해야 하게 됩니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수많은 자회사들과 연계회사들이 있는 대형 건설사의 특징 상, IMF 외환위기 시절 일어난 한보사태처럼 연쇄 부도가 발생할 위험성이 있는거죠.
거기다 A1~A2 등급 회사채의 파괴라는 신호가 가뜩이나 지난 김진태 레고랜드 임의 도산 사건과 결합하며 더욱 파괴적인 신용경색이 발생할 가능성까지 열리게 됩니다. 결국 이번 규제 완화는 이걸 풀어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도금 완화가 바로 둔촌주공에 딱 들어맞는 내용인거죠.
부동산 시장이 우상향중인 상황이면 큰 문제가 없습니다. 분양이 잘 되고, 분양이 비싸게 되어서 소위 말하는 ‘따갚되’가 가능하거든요.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리스크가 너무 큽니다.
물론 이런 정책을 아예 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당연히 이런 일을 보고 모럴 해저드(도덕 불감증)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연착륙의 과정에선 필요할 수 있습니다. 대형 건설사들의 부도를 막고, 집값의 과도한 하락 신호를 억누르면서 빚을 낸 개인들의 주택 담보 대출은 담보가치 재산정 시기가 다가오면 집값 하락, 즉 담보가치의 하락으로 인해 상환/납입요구나 실질 금리의 폭발적 증가를 겪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 영국에서 이런 사례5가 최근 발생한 적이 있습니다.
문제는 정부의 이런 신호는 분명 상승을 위한 유인이지만 실제 시장에선 그렇게 반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미 금리가 너무 올라버려서 자금 조달/유지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장의 하락에 약간 유예가 다가온다, 시간을 벌었다6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결국 50조를 때려붓겠다고 선언한 것도, 실제 50조도 아니었지만, 3개월 정도의 시간을 겨우 벌었을 뿐이라는 겁니다.
문제는 그 투자 역시 현재 집행된 곳이 둔촌주공에 그치고 있는데, 이런 점들을 보면 정부는 둔촌주공만 파행되지 않고 사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되도록 잘 틀어 막으면 내년 공급 물량에 대한 심리 자체는 안정될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해석할 수 있게 됩니다.
미시적 관점 : 중도금 대출 12억 해제 속엔 무엇이 숨어있을까?
중도금 대출은 무엇일까요? 중도금 대출은 청약을 통해 아파트를 분양받았을 때, 은행에 신청해서 받는 대출입니다. 전체 분양가를 100%라고 하면, 계약금 10% - 중도금 60% - 잔금 30%로 나눠 내게 되는데, 이 중 중도금 60%를 대출로 처리하는겁니다.
둔촌주공은 현재 평당 2,800만원에 분양가 승인이 들어간 상태고, 9억 바로 밑에서 분양될거라는 예상이 있었으나 이번 완화로 인해 34평형까지 12억 이하로 분양이 예상, 이는 다른 재건축 단지에도 희망을 줄 수 있게 됩니다. 지지기반인 강남 3구의 재건축 대상 원주민들을 향한 강한 구애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24평 기준 분양가가 12억 이하인 지역은 강남 3구, 마·용·성이라 불리는 본인의 지지기반 지역이니까요. 입주권 프리미엄이 적용된다고 해도 이번에 적용되는 LTV 50%까지 적용하게 되면 중도금 대부분을 대출로 처리, 일반 분양자들도 입주에 도전할 수는 있게 됩니다.
지난 3월 둔촌주공 일반분양 대기 수요가 5만명7에 달한다는 분석이 있었습니다. 6천세대 정도는 이 정도를 목표로 해도 완판을 달성할 수 있을거라는 계산이 섰기 때문입니다. 조합은 평당 4,000만원 이상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정부의 각종 규제 해제와 겹쳐 입법까지 노리고 있지만, 아직 불가능에 가깝다는8 판단이 듭니다.
사실상 이번 규제 해제는 둔촌주공을 위한 원 포인트 규제 해제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번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둔촌주공 일반분양이 흥행하면 어떻게 될까요? 단순히 다시 한번 청약시장에 불이 붙을까요? 만약 흥행에 실패하고 미분양이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요? 각각의 시나리오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둔촌주공 분양이 흥행한다면?
흥행하게 된다면 정부가 개입해서 부동산 경기가 부양되었다는 시그널이 시장에 던져지게 됩니다. 각 재건축 사업단지와 시공사에게는 호재가 되는겁니다. 기존 재건축 규제 완화와 물려서 1급지 재건축들이 줄줄이 진행될 수도 있습니다. 하락장에서 흔히 일어나는 극단적 마진 절감으로라도 일단 판매를 하고 보는 것이 아니라, 일단 제 값에 팔린다는 선례가 생겨버렸으니까요.
문제는 이렇게 되면 2가지 폭탄이 떠넘겨집니다. 하나는 장위 자이(분양가 평당 2800)를 비롯한 하급지들이 다시 한번 미분양 위험성 폭탄을 떠안는 것이고, 최대 23억9까지 입주권을 내고 온 초기 계약자들에게도 폭탄이 던져지게 되는 셈입니다.
둔촌주공 일반 분양이 흥행하게 되면 우선 청약에 당첨된 6천명의 일반 분양자들의 자금은 모조리 묶이게 됩니다. 의무거주10와 전매제한11 때문입니다. 오른 가격에 빨리 털고 나갈 수가 없고 계속 값비싼 이자를 지불하며 청약통장이라는 기회도 날리게 되는겁니다. 또한 청약을 노리는 사람들은 1급지 재개발을 위해 타 부동산 거래를 자제하게 되면서 더 극심한 거래량 하락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집니다. 그리고 둔촌주공보다 비싸면 몸을 사리게 되겠죠. 일종의 기준점이 되어버릴거니까요.
일반분양이 히트를 쳐도 결국 부동산 활성화로는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건설사 역시 재미를 보기는 힘듭니다. 작년 연말부터 PF가 막히기 시작했는데 공사비 또한 인플레이션/원자재 물가상승 압박을 강하게 받아 전년대비 2~30% 이상 증가한 상황인데 자금조달에 이자까지 심각하게 물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거기다 조합원들은 대위변제 자금 이자율이 7~12%에 달하는 폭탄까지 끌어안게 되었습니다. 결국 최대한 빨리 싸게, 많이 분양해서 자금회수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된 것입니다. 둔촌주공이 숨을 쉬기 위한 사실상 유일한 선택지죠.
2. 둔촌주공 분양에 잡음이 생긴다면?
하지만 만약 잡음이 생기면 어떨까요? 부동산 전문가들은 주택시장 경착륙을 막는데 일부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면서도 거래를 정상화시키기엔 역부족일거라는 해석12도 내놓았습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 전문위원은 “금리가 치솟고 있어 매수자들이 대출을 많이 내서 집을 사기 어려운 상황이다. 분양 시장과 고가주택 거래에 다소 숨통을 터주는 효과가 예상되나 매수심리가 위축돼 시장의 반전은 어렵다”고 예상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분양이 완판에 이르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둔촌보다 비싼 지구는 물론이고 둔촌보다 싼 곳도 입지조건 등을 따져서 더욱 격렬한 가격 하락 압박이 발생하게 될 것입니다. 하락 시그널이 굉장히 강력하게 발생했기 때문에 단기 자금 융통을 통한 거래량 상승도 기대할 수 없게 됩니다. 문제는 고덕지구와 하남 미사지구가 둔촌주공의 가격 변동과 직결13되어있다는겁니다. 둔촌의 가치가 떨어질수록 같이 급락하게 되죠.
심지어 HUG의 고분양가 심의로 예상수익이 고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낮은 계약율로 인해 금융비용이 증가하게 되면, 건설사 입장에서는 생존이 걸린 문제로 넘어가게 됩니다. 가뜩이나 현재 재개발/재건축 사업은 대다수가 착공하는 순간 적자가 확정되어버리는 상황이라 불릴 정도인데, 이런 시기에서는 대형 건설사조차도 계약이 제대로 안 되면 부도 위기에 몰릴 수 있는 극단적 상황까지 예상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한국 부동산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었던 ‘우상향’이라는 하나가 잠시동안이지만 깨어지게 됩니다. “이렇게까지 풀어줬는데도 완판이 안되고 미분양이 났다고?”라는겁니다. 정부에서는 계속 재건축을 추진하겠다고 하는데, 시장 자체가 급속도로 얼어붙게 되는 셈입니다. 사업이 안 되는데 어쩌겠어요. 이렇게 되면 부동산 자체가 파멸적 폭락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무엇보다 윤석열 정부의 이번 원 포인트 단기 처방은 한국 경제가 리스크로 이어지는 뇌관 중 하나인 가계부채를 더욱 심각하게 자극하게 된다는 문제가 생깁니다. 채상욱 포컴마스 대표는 “대출 문턱을 낮춰주는 긴급 처방이 부동산 경기 활성화에 효과적일 수는 있지만, 길게 보면 가계부채를 더 키워 또 다른 사회·경제적 부작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14”고 언급했습니다.
당분간 금리 인상 기조가 이어지는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부동산 규제 완화가 정말 답일지 의문은 계속 제기됩니다. 정부는 부동산 실수요자에게 규제를 풀어 거래 절벽을 풀고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시킨 뒤 이렇게 담보 가치를 지켜 신용 경색을 막겠다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 같지만, 연준의 기준금리가 계속 오르고 덕분에 부동산이 대세 하락장으로 접어든 지금 이런 거래 활성화 대책은 당분간은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일반 분양 과정을 좀 더 지켜볼 필요는 있으나, 『결국 이번 규제완화는 둔촌주공이라는 뇌관을 부동산 시장에 더 깊숙하게 박아서 일찍 폭발하든, 늦게 폭발하든 폭발의 파급력만 더욱 키웠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 Special Thanks to Real-Asset Advisory : 아픈데 아프다아, Damola
조합이 원하는 대로 평당 4000만원대 분양가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https://www.mk.co.kr/news/realestate/view/2022/08/717947/
둔촌주공 전용 84㎡ 입주권은 지난해 10월 23억7000만원에 팔렸지만, 지난 8월에는 17억3900만원으로 내려왔다. 현재 시장 호가는 15억원까지 하락했다. https://www.hankyung.com/realestate/article/2022101741116
현행 주택법에 따르면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등에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된 지역의 민간택지 아파트 입주자는 2~3년, 공공택지에 지어진 아파트 입주자는 3~5년 동안 의무적으로 실거주해야 한다. 또 실거주를 시작하는 시기는 최초 입주 가능일, 즉 새 아파트가 완공된 직후부터 시작된다.
주택법 제64조에 따르면 주택의 전매행위 제한을 적용받는 주택은 △투기과열지구(최대 5년) △조정대상지역(최대 3년) △분양가상한제 적용주택(최대 10년) △공공택지 외 택지(최대 3년) △공공재개발사업 주택 등(최대 10년) 크게 5개 유형이다.
http://news.bizwatch.co.kr/article/real_estate/2022/09/23/0010
감북지구는 서울 둔촌동 둔촌주공 1~4단지와 마주보고 있다. 하남 미사강변도시는 감북지구와 같은 보금자리지구인 데다 수요자 사이에서 서울 송파·강동구와 달리 미사지구는 감북과 같은 지역권으로 인식하는 심리가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