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랜드에서 시작된 채권 불안이 점점 전체 시장으로 커지는 추세입니다. 한양증권같은 곳은 매각 루머가 여의도에 이미 파다한 상태죠. 물론 그럴 일 없다며 금감원에 허위 루머라고 신고1했지만, 그만큼 한국 내 금융시장 전체가 엄청나게 긴장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꼴랑 2천억 규모의 이번 지급보증 거부 및 회생결정에 시장이 이렇게 얼어버린걸까요? 2021년 기준 PF ABCP 발행 규모는 18조2에 달하는데 말이죠?
먼저 이걸 알기 위해선 PF ABCP가 무엇인지, 어떤 구조로 자금이 움직이는지, 그리고 지방 건설 사업들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PF ABCP, 대체 뭘까요?
영어 덩어리만 보면 울렁거리는 분들을 위해 풀어보면 PF ABCP는 PF와 ABCP로 구분됩니다. PF는 Project Financing, 쉽게 말하면 특정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말합니다. 대부분의 부동산 개발사업들이 큰 자금을 필요로 하는지라, 이런 부동산 사업에는 대부분 어떤 방식이든 PF를 통해 자금을 조달합니다.
그럼 ABCP는 뭘까요? ABCP는 Asset-Backed Commercial Paper, 자산담보부기업어음입니다. 자산을 담보로 해서 기업이 어음을 낸다, 즉 일종의 회사가 발행한 어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일반 회사채/어음과 달리 이런 ABCP는 매출채권이나 자산담보증권, 주택저당증권 등을 담보로 발행하기 때문에 담보물이 비교적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합해보면 PF ABCP는 ‘부동산 사업을 하기 위해 해당 부동산을 담보로 발행한 어음’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왜 1%정도 밖에 안되는 2천억이 문제가 되었나요?
본 내용을 들어가기 전에 지금의 상황을 정리해보겠습니다.
금리가 오르고 땅값이 내려 부채상환 불가 + 금융비용 증가 이중고를 겪었다
코로나로 인한 개장지연, 멀린과의 계약때문에 수익성이 낮았다.
채무 만기 시점이 되자 땅을 다 팔아도 400억 적자인 상황이었다.
GJC가 자체적으로 해결을 하지 못하자 지급보증한 강원도에 도움을 요청했다
강원도는 일방적으로 회생절차에 돌입, 아이원제일차 SPC를 부도내버렸다.
그 과정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보증을 해 준 A1등급 채권 신용도가 급락했다
회사채 시장 곳곳에서 공포가 전이되기 시작했다.
PF 자금이 모조리 경색되자 건설사들이 부도 위기로 몰리기 시작했다
덩달아 거기에 돈을 대줬던 금융사들도 연달아 피해3를 입었다
채권에은 신용등급이라는게 있습니다. 레고랜드 사업에서 발행된 PF ABCP는 강원도가 지급보증을 한 어음이라 A1이라는 높은 신용등급을 받았었죠. 지자체가 파산할 가능성이 보통은 극히 낮고 이행을 잘 해주니까 웬만해선 믿어도 된다라는 계산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강원중도개발공사(이후 GJC)의 지출규모가 총 4,524억(여기에 문제의 2,050억이 포함됩니다)이고, 부지 매각 등으로 얻을 수 있는 총 기대수익이 4,130억에 불과해 강원도가 약 412억을 지급해줘야 하게 되자 도는 지급을 거부하고 바로 기업회생4 신청을 질러버렸습니다.
기업회생이란 기업이 도저히 혼자 사업을 이어나갈 수 없을 때 하는 최후의 수단입니다. 채권자들과의 자율협상이나 채무조정(워크아웃)과 같은 절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걸 생략한 채 회생에 나선거죠. 심지어 GJC는 BNK 투자증권과 차환발행에 대해 합의를 했고, 4개월치 이자를 선납5했음에도 불구하고 회생계획부터 던지는 바람에 파장이 더 커졌습니다. 회생이 그만큼 강력한 절차이기 때문입니다.
회생에 들어가게 되면 법원은 기업의 재산을 임의로 사용할 수 없게 보전명령과 채권자들의 권리를 중지시키는 중지명령을 내립니다. 이후 심사를 실시하여 관리인을 선임해 기업회생에 나설지, 혹은 기업의 경영 가치가 없다고 판단해 청산시킬지를 결정하게 됩니다. 특히 이 배경에는 지금까지 국민의힘측에서 GJC 경영과 관련된 정보에 접근할 수 없었기에 이런 극단적인 방법을 써야만 GJC를 면밀하게 분석할 수 있을거라는 계산6도 깔려 있었습니다.
문제는 GJC는 아이원제일차라는 SPC(특수목적법인, Special Purpose Company)를 통해 자산유동화를 했고 GJC가 관리처리되면서 모든 채권자들의 권리가 정지되자 아이원제일차가 바로 부도가 났다는겁니다. 그러면서 최고 등급(A1)이었던 ABCP의 신용등급은 채권이 받는 최악의 신용등급인 D로 추락하게 되고, 주관 업무사인 BNK 투자증권은 쥐고있던 채권이 모조리 쓰레기가 되는 마법을 겪게되죠.
레고랜드 자금은 강원도가 신용보강을 해 준 형태라, 채권시장에서는 꽤나 견고한 물건 취급을 받았습니다. 문제는 GJC의 수익은 레고랜드 임대료의 3%7에 그쳤다는거죠. 거기다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개장이 계속 지연, 재무 건전성이 나빠져서 GJC가 대출상환에 실패하게 되었습니다.
강원도는 원래 여기에 대해 지급을 해야 했으나, 신임 도지사는 이것이 수익이 안된다고 생각한건지 ‘빚을 줄인다’는 명목하에 무조건적으로 사업 자체를 날리는 강수를 뒀습니다. 그렇게 되자 시장에서는 '지자체 보증도 못 믿는데 그럼 그 아래 등급 채권은 어떻게 믿냐?'는 공포심리가 강하게 퍼지게 됩니다. 이 사건이 터지면서 금융가 전반에서는 지자체 보증 사업에 대한 전면 재검사가 실시될 정도였으니까요.
가뜩이나 미국에서 시작된 금리 인상과 그로 인해 발생한 어마어마한 금리 문제, 그 기저에 있던 물가 상승, 그리고 거의 예정되다시피 한 글로벌 경기 둔화라는 악재로 인해 부동산 시장은 얼어붙어 있었다는겁니다. 이를 개발하기 위한 사업 역시 얼어붙어가는 중이었는데 이 사건은 거기다 찬물, 아니 액체질소를 확 끼얹어버린거죠. 위험도 가장 낮고, 단기상품이라 수익실현도 금방 되는데 그게 망했다? 당연히 시장에선 공포를 느끼겠죠.
사실 이 문제는 작년부터 이미 말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금리가 크게 올라 2년간 최대 200억에 달하는 이자를 갚아야 했기 때문8입니다. 문제는 당시에 공사가 안되면 멀린 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상 배상책임이 생겨서 어쩔 수 없이 진행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정말로 지급보증 거부밖에 없었을까요?
강원도측에서는 사건이 이정도로 커질 것을 예측하지 못한 것처럼, 처음에는 “BNK가 회생과 지급보증을 구분 못해서 생긴 문제”라고 탓9을 하더니 정부까지 나서서 압박10에 나서자 채무를 다 갚겠다고 진화에 나섰습니다.
물론 도측에서는 여전히 폐광기금이 굳건11하기에 2천억 정도는 털어도 문제가 없다는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강원도측의 전략은 크게 2가지로 보입니다. 하나는 스토킹호스나 P플랜을 통한 M&A를 추진하겠다는 것12이고, 다른 하나는 회생에 들어가야만 자기들이 모르는 기밀정보에 접근13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토킹호스란 인수의향자를 정해놓고 입찰을 진행하는것이고, P플랜은 인수예정자를 정하고 회생을 진행하는겁니다. 강원도측에서는 ‘신속한 정상화’를 말하지만, 기실은 두 방식 모두 도가 원하는 인수의향자에게 운영권을 넘겨줄 수 있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또한, 과거 국민의힘측은 계약을 정치적으로 쟁점화해서 문제를 제기했으나 기밀계약이라 무산된 적14이 있었죠. 두 곳에서 모두 이익을 챙기기 위한 계획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고 신용등급을 받은 ABCP의 부도소식이 시장에 터트린 불신은 기업어음(CP)과 자산담보부단기채(ABSTB) 가치 추락으로 이어졌습니다. 공포에 질린 시장 참여자들이 어음과 채권을 모조리 시장에 내다 팔려 하다보니 가격이 떨어지고 채권금리가 오르게 된거죠. 이 급락세는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로 심각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채권 수익률 증가는 좋은 말 같지만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채권은 결국 만기에 이자가 정해져있는거라, 가치는 정해져 있거든요.
수익률 급증은 채권의 가치가 급락한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게 됩니다.
일각에서는 “분양이 끝난 우량 사업장도 ‘AB’자만 붙으면 안 팔린다”, “가뜩이나 살얼음판이던 시장에 레고랜드 사태가 기름을 끼얹으면서 부동산 관련 유동화물뿐만 아니라 채권시장 전반이 무너지고 있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사태가 커지자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기자회견을 열어 2,050억원에 대한 전액상환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와 함께 GJC에 대한 법원 회생 신청을 동시에 진행, 새 인수자가 나타나고 매각 대금이 들어오면 그 돈으로 원금을 상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회사채 시장 전반으로 유동성 위기가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라, 채권시장이 단기간에 안정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란 시각이 높습니다. 게다가 회생을 한다고 채무가 줄어드는것도 아니라서15 이 공세가 도에서 언급한 것 처럼 ‘혈세 낭비, 부채 줄이기’인지에 대한 의문도 남습니다.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김 지사도 이렇게까지 일이 커질지는 몰랐겠지만 정치인의 무책임한 판단으로 경제적 피해자만 양산하게 됐다16”고 지적했고, 다른 증권사 딜러는 “강원도 건을 빨리 해결하고 신용채권들의 막힌 혈을 뚫어야 한다. 금리를 더 올려야 하는 등 여건이 너무 나빠 불안한 크레딧 리스크를 돌파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17”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강원도 지사측의 세 가지 이유
비밀 조회를 통한 정치공세
새 매수자 찾기
GJC의 자립 불가능한 상황
에서 시작한 회생이 남긴 상처에 대해 확인해 보았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레고랜드가 어떻게 시작해서 여기까지 왔는지, 왜 멀린 엔터테인먼트가 문제가 되었는지, 문화재 문제가 과연 누구의 책임인지에 대해 하나 하나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https://news.einfomax.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38773
https://www.dnews.co.kr/uhtml/view.jsp?idxno=20210902155029698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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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yeongwol-mail.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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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3007766632492920&mediaCodeNo=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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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295378
http://www.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22102102109958051001
https://chmbc.co.kr/article/ttXcWRaNpDCJYeq-
강원랜드에서 나오는 소득이죠 http://www.kwnews.co.kr/page/view/2022090112023093467
https://news.nate.com/view/20221021n27220?mid=n1101
“GJC가 강원도에 정보를 주지 않으니 회생신청을 해서 법원을 통해 자료도 받고 대책도 마련하기로 한 것”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3007766632492920&mediaCodeNo=257&OutLnkChk=Y
http://www.chunsa.kr/news/articleView.html?idxno=49344
강원중도개발공사의 채무 감액 시에도 강원도의 2,050억 원에 대한 보증책임은 감액되지 않기 때문에 사실적으로나 법적으로도 근거가 없다. http://www.c1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22525
https://www.hankyung.com/economy/article/2022102153311
http://www.newskom.co.kr/view.php?ud=202210211408209754d94729ce13_59&ns=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