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외환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IMF는 구제금융을 마련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구제금융으로는 부채상환 요구를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죠. 당시 미국 재무부는 97년 연말, 채권자들을 설득하여 채무상환 유예를 성공시킵니다.
하지만 이건 미국 재무부가 딱히 선하거나 한국이 동맹이라 그런게 아닙니다. 바로 IMF와 미국은 한국에 세 가지 요구를 하게 되죠.
고금리 정책 실시
전면적 구조조정
전면적 시장개방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상합니다. 만약 기업 및 금융기관의 부실과 재정건전성, 채무 등의 문제 때문에 외환위기가 일어났다면 고금리 정책은 기업들이 살아나기 힘들게 되어, 오히려 외국인들이 한국 기업에 투자를 하지 않게 하는 요인이 될 것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구조조정은 적당한 처방이었지만, 거기에 상충되는 고금리 정책은 IMF와 미국의 실책 혹은 과도한 요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1이 많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앞서 두 편의 글에서, 당시 한국의 외환위기는 내적 요인보다 단기 외채를 지급보증했던 한국 정부가 가지고 있던 외화준비금이 부족하여 일어났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본다면 고금리 정책과 금모으기, 그리고 달러 예금은 - 비록 1998년 심각한 불황을 함께 불러오긴 했지만 - 403억달러의 경상수지 흑자를 이끌었고, 이 돈은 외화준비금으로 이어지며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2.
반면 구조조정 요구는 어땠을까요? 당시 위기의 원인으로 “한국 경제는 기업들이 구조적으로 부실했기 때문”이라는 진단은 마치 한국 경제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는 인식을 주었고, 이는 오히려 투자를 회수하고 자본이 한국 시장에서 달아나게 하는 결과만을 낳았습니다3.
실제로 1998~99년에는 기업 부실로 인한 문제가 크게 악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본유입은 충분히 이루어졌던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1999년에는 경제가 바로 회복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실제로 구조조정이 하루아침에 짠 하고 해결되는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죠. IMF 졸업은, 결코 구조조정의 성과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전면적 시장 개방은 어땠을까요?
한국의 위기의 원인은 과다하게 유입되었던 핫머니와 단기채들이 한꺼번에 상환을 요구하면서 생겼던 것인데,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처방으로 단기자본 유입 자유화를 요구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외환위기의 원인을 해결하고자 했으면, 자본 시장 개방 순서나 범위가 잘못되었으니 개방 일정을 다시 만드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었을 겁니다. 장기채(국채, 회사채) 발행이나 주식 발행을 통한 자본 도입이 먼저 진행된 후, 그 다음 리스크 관리나 거버넌스를 확인한 뒤 단기 자본 거래에 대한 개방이 따라왔어야 정상입니다. 하지만 미국은 자본 시장 완전개방과 함께 국내 구조조정을 요구하였습니다.
그 요구사항 중에는 외국인의 종목당 주식 취득 한도를 26%에서 55%로 확대하는 것을 비롯, 외환거래 전면 자유화, 외국인 직접투자 허용, 소액주주 집단 소송제, 정리해고제, 민영화, 재정지출 억제 등이 있었습니다. 민간 경제를 부양해야 할 정부의 손발을 다 묶어놓고 돈 놓고 돈 먹기를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IMF의, 아니 정확히 그 뒤에 있던 미국의 처방은 외환위기의 해결책으로 적절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잘못된 정책이 강제적으로 시행되는 동안 한국은 자산을 헐값에 매매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기업들은 구조조정이란 미명 하에 강제로 손발을 자르고 연구개발을 줄여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매물들은 차곡차곡 외인들이 사들였습니다. 그 중에는 한국에 대한 대출 만기 연장을 거부, 외환위기를 일으킨 장본인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은 대출 당시 한국의 은행, 기업들의 재무제표를 모두 구했고 기업 부실을 모두 알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부실을 알고도 한국의 은행에 대출을 한겁니다. 정부가 이들 은행을 구제할 것이라고 판단했던거죠. 그러다 외환보유고가 말라 지불보증 능력을 상실한 것을 알고는 의도적으로 뱅크런을 일으켜 외환위기를 촉발시킨 것입니다.4
하지만 정부는 여기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국가 부도라는 거대한 파도가 하루 하루 몰아치는 도중에 겨우겨우 따낸 구제금융과 채무상환 유예를 거부하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당연히 국가부도의 날은 현실에 닥쳤을겁니다. 외통수였죠.
조세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그의 저서5를 통해 “IMF의 힘에 눌린 한국 공무원은 감히 불만을 표시할 수조차 없었을 것”이라며 “구제금융을 주면서 요구한 것 자체가 원인과 무관하게 그 요구사항을 지키지 않으면 한국 경제를 살려주지 않겠다는 협박”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국내 정치권에서는 이를 감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히려 새로이 당선된 김대중 대통령은 이를 활용했죠. 실제 김대중은 대선 레이스 때는 IMF에 대하여 강경한 재협상론을 내세웠으나, 당선 후에는 IMF의 요구는 한국경제의 개혁 기회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6
실제로 외환위기 전 한국 경제에 분명히 구조적 문제는 있었습니다. 그리고 재벌과 언론, 그리고 당시 한나라당7이 장시간 집권하면서 뿌리내린 이들과 거기에 딸려오는 관료들의 힘이 너무 강해서 개혁을 시행하기 힘들었죠. 앞서 1편에서 언급했던 것 처럼, 김영삼 대통령도 임기 말에 경제 개혁입법을 통과시키려 했지만 여당은 이미 김영삼의 상도동계에서 등을 돌린 뒤였거든요.
정권교체를 이룬 김대중 대통령은 이 점을 노렸다고 보입니다. 실제 외환위기 직후 수습의 실무를 지휘했던 이규성 역시 이런 강제적 경제 재편은 정부와 민간의 공통되었던 견해라고 말합니다.
실제 당시 조선일보 사설(1997년 11월 25일), 한겨레신문(1997년 11 월 25일)은 각각 IMF 구제금융 사태를 “일시적 금융위기의 해결로서가 아니라 우리 경제의 새로 운 지향과 발전전략으로 재무장하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당위적 전환점으로 삼 아야 한다는 데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나갔다”, “경제 ‘신탁통치’를 활용하자”, “IMF의 구조조정 요구가 우리 학계가 진작부터 주장해 온 것이므로 IMF의 요구를 적극 수용해야 한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당시 일본은 IMF에 기금을 더 넣는 식으로 한국에서의 영향력을 늘리려 했고, 미국은 이를 억제하면서 한국에 개혁 압박을 수행했습니다. 플라자 합의로 일본의 힘을 뺐던 것 처럼 IMF를 통해 한국의 힘을 빼고 일본이 아닌 미국의 영향력만을 남기고자 했죠.
하지만 한국은 이런 IMF라는 강심제를 씹어먹고 광범위한 개혁을 이루어냅니다. 외환위기 이후 추진한 기업, 금융, 정부, 노사관계의 4대부문 개혁은 매우 압축적으로 일어났습니다. 물론 부작용이 없을 수는 없었습니다.
먼저 커다란 불황이 다가왔습니다. 1998년 한국경제는 -6.9% 성장, 1998-2000년간 기업의 영업이익률은 외환위기 전보다 더 악화되었습니다. 일자리를 잃은 수많은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부채비율 200%, BIS 비율 8% 등 강제화된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한국의 많은 자산도 싸게 팔려나갔습니다.
상위 4대재벌이 1999년 말 구조조정 보고에서 108억달러에 해당하는 자산을 매각했음을 밝혔습니다. 이를 포함해 증권시장, 현물시장 등에서도 손실8이 있었습니다. 국내 자본이 손이 묶인 상황에서 약 3000억달러 이상의 순손실을 입었습니다.
물론 그 주된 원인은 제약이었으나, 공적자금 조성이 부족했다는 점이 더 큰 문제였습니다. 공적자금은 64조로 출발하였으나 실제 무디스나 S&P 같은 신용평가기관은 부족하다고 주장했고, 결국 124조원의 자금을 조성했지만 시기를 놓친 뒤였죠. 특히나 당시 한나라당측에서는 연기금 투입등에 대해 반대9하며 공적 자금 조성에 계속 반대입장을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 부채비율은 외환위기 후 지속적으로 떨어져서 2006년 말에는 100% 아래로 떨어졌고, 전체적으로 재벌을 포함한 기업에 대한 거버넌스도 개선10되었습니다.
은행 역시 BIS면에서 많은 개선을 보았습니다. 1998년 7.0%에서 2006년 12.8%로 상승하고 부실여신비율은 1999년 12.86% 에서 2006년 0.84%로 대폭 낮아져 건전성이 향상되었죠. 이는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신설, 감독 기능이 대폭 강화된 것이 주된 요인입니다.
IMF는 분명 고통이었습니다. 하지만 달러 시뇨리지라는 강력한 힘과 IMF를 수족으로 부리는 미국의 시장개방 요구 역시 우리나라는 자력으로 피할 수 없습니다. 비록 초래 과정에서 수많은 실수가 있었고, 막을 방법이 있었지만 일단 발생한 외환위기에서 수많은 고통 끝에 한국은 겨우 전 세대의 문제를 해소하고 다시 출발선에 설 수 있었습니다.
IMF는 결코 과소비의 원인이 아니었습니다. 국민을 버린 채 각자도생으로 몰아붙인 것도 아니었습니다. 국내 경제의 뒤에는 국제 경제가 있었고, 국제 정치가 있었으며, 수출을 앞세워 달러를 가져가는 도전자에 대한 냉혹한 챔피언의 응징이 있었습니다. 한국은 그 응징에 대해 살아남고자 발버둥쳤고, 살을 내주면서도 뼈는 지킨 채 살아남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남았습니다. 그것을 기억하면서 언제고 다가올 수 있는 세계적 위기에 눈을 뜨고, 정확히 알고, 더욱 조심하며 앞으로의 미래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흉터이자, 사명이고, 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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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ng, Un-Chan(2004), “The Korean Economy before and after the Crisis”, in Duck-Koo Chung and Barry Eichengreen eds., The Korean Economy Beyond the Crisis, Cheltenham, UK: Edward Elgar, 2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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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1월 21일 청와대 경제영수회담 대화록: 세계일보 11월 22일자; 대선 3당 후보 첫 합 동토론회 경제분야: 동아일보 11월 27일자
신한국당은 외환위기 이후 대선에서 심판론을 피하기 위해 상도동계를 버리고 해산, 민정당계와 공화당계와 손잡고 한나라당으로 재창당하게 됩니다.
신장섭․장하준(2004), “주식회사 한국의 구조조정”, 창비.
한나라, 연기금 투자 반대 “전문성 책임성 떨어져” https://www.nocutnews.co.kr/news/26433
‘연기금 주식투자 확대’ 무산 https://www.joongang.co.kr/article/269008#home
“연기금 주식투자 年2.1% 손실” https://www.donga.com/news/Economy/article/all/20010415/76764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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