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두 개의 포스트에서 IMF 이후 개인이 경제적으로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했고, 미래를 위한 현재의 투자였던 연금 보장 금액이 악화되었으며, 이들이 프랜차이즈 대란을 거쳐 자영업자가 되었고, 그 중에서도 자산이 좀 더 있었던 중산층들은 주택임대사업자가 되도록 국가가 유인을 해 왔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반에는 각종 규제 해제와 대출 완화가 있었죠.
일반적으로 부동산 정책의 변화가 주택 가격을 바로바로 바꾼다고 하는데, 실제 정책 자체는 시장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그 영향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실제 자금이 조달되는 대출 금리같은 환경, 그리고 실제 수요자들의 시장 심리, 신규 분양되는 매물, 재건축이나 재개발 상황 등이 영향을 더 크게 줍니다. 또한 주택 정책이 시장에 영향을 주는데는 일정한 시간 차이가 발생합니다.
주택이라는 것이 스타크래프트 건물 올리듯 순식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재건축이나 재개발, 신도시 개발과 같은 공동주택 공급에는 건축시간을 포함해 각종 인허가나 도시계획, 협상과정 등을 모두 고려하면 약 5~10년정도의 정책시차가 발생하죠. 그러다보니 부동산 정책은 그 정부의 성과 혹은 실책으로 오롯하게 평가받기 힘듭니다. 그렇기에 시간이 지난 지금, 그리고 한 차례 유동성이라는 밀물이 들어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지금에서야 정확한 평가가 가능해지게 됩니다.
부동산 경기 부양은 왜 문제였을까요? 도생주택의 과도한 인허가가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요? 박근혜 정부가 야심차게 제시했던 행복주택은 어떤 충격을 준 것일까요? 임대사업자를 향한 정책은 어떻게 변화한 것일까요? 그리고 왜 부동산을 쥔 사람들은 보수화가 되고, 보수정권에 투표하는 것일까요?
한국감정평가학회에서 2020년에 발행한 『행복주택 공급이 주변 아파트 매매 및 임차 시장에 미치는 영향: 지역별 분석1』을 참고하면 재미있는 현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행복주택 지구 지정이 본격화되자 갑자기 부정적 인식과 집단적 반발이 발생했다는 점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많은 사람들은 기존 공공임대주택 정책이 저소득 층 대상 공급과 대규모 공급 위주로 진행됨에 따라 임대주택 단지는 저소득층의 집단 거주지 라는 부정적 인식이 자리 잡았고, 이는 주택가격하락에 대한 우려로 이어졌기 때문으로 분석2하고 있습니다.
단국대학교 산학협력단에서 조사한 결과3는 좀 더 직설적입니다. 연구자료에서는 『기존 주택 임대사업자의 임대료보다 낮은 수준 으로 공공임대주택 임대료가 책정, 임대 사업의 수익이 저하될 것이라는 우려로 인접 원룸 주민들은 행복주택 지구 지정 전면 철회를 요구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연구결과에 따르면 공공임대주택 공급이나 행복주택 공급에 의해 나타나는 주변 환경 개선, 교통 인프라 수준 향상 등 긍정적인 효과 때문에 임대료가 최종적으로는 상승한다는 결과가 나왔지만, 당장 민원 처리에서 임대주택이 우선시되는 역차별 현상의 발생이나 기존에 있었던 임대 단지 주거민이 갖는 나쁜 인식, 무엇보다 대학 인근에서는 제한되어 있는 소비자층에서 경쟁을 해야 하다보니 이런 인식이 부풀려지면서 공포심을 키운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정책을 집행한 것에 대해서는 박근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이해해야 합니다. 박근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크게 투 트랙으로 나뉘는데, 하나는 서브프라임으로 인해 긴 침체기를 겪던 부동산 시장을 부양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청년층에 대한 주택공급책인 행복주택이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봐야 할 지난 두 보수 정부의 정책기조는 민간의 돈을 이용해 사업을 했다는 점이죠. 그 초점을 개인에 맞추느냐, 혹은 기업에 맞추느냐의 차이가 생긴 것입니다.
특히 주목할만한 것은 2014년 2월 26일에 발표된 ‘서민, 중산층 주거안정을 위한 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과 2014년 7월 24일에 발표된 부동산정책입니다. 이들은 LTV, DTI 규제완화와 더불어 민간임대주택 공급활성화와 규제 완화, 재건축/재개발 규제, 청약규제 완화 등을 담고 있습니다. 또한 재건축초과이익 환수를 3년 유예하는 등 모든 정책이 주택가격 상승을 목표로 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이명박 정부가 부동산 부양을 위해 백약을 처방했으나 서브프라임 당시 경제 상황과 맞물려 주택 구입 수요가 크게 감소4하는건 막지 못했고, 그러면서 당시 수행되었던 보금자리주택과 겹쳐 실제 보금자리주택이 13만 가구 공급에 그쳤음에도 불구하고 실거래 수요에 충격을 줘서 민간 아파트가 경쟁력을 크게 상실했었던 건에 대한 피드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 데이터를 보면 제2신도시 아파트가 분양이 되지 않기도 했죠.
물론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모두 장기적으로 주거의 형태가 자가나 전세가 아닌 월세의 형태로 이전되고 1인 가구의 비중이 크게 커질 것이라 생각했기에 공급을 조절하는 식으로 억지로 시장 구조를 바꾸려 했던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잘 되지 않았죠. 국민들은 여전히 많이 왜곡되어있고 시장 참여자 자체가 작아서 부작용도 크게 나타나는 한국 증권시장이나 채권시장같은 자본시장에 참여하기보다 우상향할 부동산에 배팅을 이어나갔습니다.
데이터를 보면 2015년 이후 분양 시장을 필두로 주택 매입 수요가 확대되는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2016년 들어 서울과 수도권, 전국 주요 대도시들의 분양가가 큰 폭으로 상승하였는데 여기에는 투기 세력들도 가담한 것으로 분석5되고 있습니다. 인용한 연구(조명래, 2017)에 따르면 2016년 상반기 주택거래량의 약 30%는 분양 거래가 차지하였고 이 중 40%는 분양권 전매 목적으로, 상당수의 분양 계약자들은 실거주 목적이 아닌 단기 매매차익을 노린 투기세력이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런 투기세력을 제외한다면 박근혜 정부 당시 무주택자 중 30%정도가 주택을 구입, 부동산 경기 활성화의 혜택을 누린 것으로 집계되었고, 나머지는 주택가격 상승으로 주택구입 기회가 줄어들어 오히려 불이익을 본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이는 부동산 시장의 특징을 잘 반영하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주택 수요자 일부가 주택을 구입하고 나면 실제 주택구입 여력이 현저하게 낮은 나머지 주택구입 희망자들은 자금 조달 등의 이유로 대기수요 형태로 남게 됩니다. 이들이 주택 구입을 포기하면 청약 시장 등에서 충격이 발생, 주택 경기의 대세가 변하게 된다고 보입니다.
요는, 이 당시부터 저리의 이자로 실수요층은 상당히 구매를 했고 시장에 있던 매물과 수요자는 점점 줄어들어간다는 것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무주택자 100%가 주택을 구입할 수 있는 형편이 된 것은 아니니까요. 이렇게 주택구입 수요가 낮아지고 신규 주택 공급 - 84㎡ 이상 - 이 위축되면서 전월세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게 되었는데, 이때 부랴부랴 전세대출이 대폭 확대되게 됩니다. 기실 2018-2019년의 주택가격 상승에는 이 대출들이 원인인데, 이 이야기는 다음편에 추가로 다뤄보려 합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2016년 하반기 들어 갑자기 주택정책 방향을 수정하기 시작합니다. 2016년 8월 25일 『가계부채 관리 방안』에서는 공공택지 공급축소, 중도금 대출 개선 등을, 『11.3대책』에서는 강남 4구 등 투기과열 지역의 분양권 전매금지 및 1순위 청약조건 강화를, 『12.24 대책』에서는 잔금대출 규제 강화 등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리고 2017년 1월에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ebt Service Ratio, DSR) 6을 도입하여 가계대출을 억제할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불경기에 대한 경계가 슬슬 나타나고 있었고, 가계부채가 점점 심화되었으며, 부동산 시장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았기 때문에 이런 정책이 나왔던 것이지만 당시 시장에서는 이런 규제책들에 대해 “강력한 정책 의지를 반영한 것은 아니었던 것”, “탄핵을 앞두고 정국이 극도로 불안한 상황에서 관료 조직에서 부동산 시장 동향에 대해 임기응변식으로 생색내기 차원에서 대응한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하지만 이 정책은 방향만 놓고 보면 옳았지만 기존에 풀려있던 전세대출, 신규 진입이 힘들어진 대출 억제, 줄어든 공급, 이미 빠져나간 수요자 등과 결합하며 이후 정권 교체와 함께 주택시장에 커다란 충격을 주게 됩니다.
이렇게 당시 시장 상황을 복기해보면 보수 정부의 부동산 역시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당연히 정책보다 외부환경의 영향이 더 크고, 내부적으로는 인구 구조(주로 연령) 변화나 갓 독립했을때는 작은 집을 원하다 이후 결혼 등을 하며 좀 더 좋은 집을 바라게 되는 수요의 전이 과정 등이 영향을 크게 주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지켜보아야 할 것은 그 과정에서 보수정부와 민주정부가 국민, 주로 주택이 있는 유산층에게 주는 메시지의 차이입니다. 보수정부는 꾸준히 ‘개인의 이득’, ‘기득권의 이득’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실제 그렇지 않더라고 해도 언론들이 그런 쪽에 집중하죠.
하지만 민주정부는 조세 정의 등을 통해 ‘미래와 약자를 위해 희생할 것’을 이야기합니다. 당연히 저항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나 지난 정부에서 혜택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주택으로 이득을 본 (당시) 무주택자의 30%는 이후 주택 가격 상승과 겹치며 강력한 보수정부 지지세력이 된거죠. 21대 대선에서 서울/경기권의 극적인 변화가 이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COVID-19 대유행과 더불어 체감 경기 하강이 강하게 다가오자 ‘증세와 희생에 동의하는가’라는 명제는 빛이 바랠 수 밖에 없습니다. 정말로 부동산이 급격하게 올라 사람들이 보수정부를 찾은 것일까요? 그렇게 생각하진 않습니다. 진짜 원인은 심리죠. 내가 이득을 볼 수 있는가, 내가 희생을 할 여력이 있는가에 답하는 심리 말입니다.
다음 타래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수요 조절 실패, 전세대출 정책 급발진과 COVID-19 팬대믹이 함께 만들어낸 문재인 정부에서의 부동산 난맥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 이 흐름을 이해하게 되면 비로소 우리는 ‘언제 부동산에 투자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과 함께, 보수정부의 소위 ‘경제는 보수다’에 대한 실체와 더불어 민주정부의 ‘과연 민주당은 진보인가’에 대한 답을 내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https://kiss.kstudy.com/thesis/thesis-view.asp?key=3849795
홍종문· 이주형(2006), “국민임대주택 입지가 주변 아파트 가격에 미치는 영향 분석”, 도시설계, 7(3), 한국도시설계학회, 23∼32쪽.
단국대학교 산학협력단 분쟁해결연구센터.(2014), 행복주택 공릉지구 시범사업 갈등영향분석 최종보고서.
https://www.ifs.or.kr/bbs/board.php?bo_table=News&wr_id=3202
조명래, 박근혜 정부의 주택부동산정책 평가와 향후 과제, 한국감정원, 부동산 포커스 108호, 2017. 5월
LTV나 DTI가 개별 대출 계약에 적용되는 데 비해 DSR은 전금융기관을 대상으로 부채의 규모를 파악하고 원리금상환부담 능력을 평가한 다음 대출 실행 여부나 대출 규모를 정하는 방식이라, 더욱 강력하게 작용하게 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