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가장 뜨거웠던 소식은 일본 채권수익률의 변동이었습니다. 월가에서는 일본은행(BoJ, Bank of Japan)의 신임 총재 부임과 맞물려 일본의 수익률곡선통제(YCC, Yield Curve Control) 정책이 폐기 혹은 수정될 것으로 전망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전망은 원/엔 환율에까지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습니다.
박상현 하이투자 연구원은 “원-엔 동조화가 심화되었고, 원/달러 환율의 추가하락 압력이 높아질 수 있다”고 인터뷰에서 언급1했는데요. 이는 최근 약세를 보이고 있는 한국의 수출과 엮여 추가적인 하락을 경고하는 지표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블룸버그 등 외신 일각에서는 한국의 수출입이 세계 경제의 선행 지표로 활용되는 것을 근거로 향후 경기 침체가 거의 확실하게 다가올 것이라는 전망2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대체 YCC가 뭐고 BoJ가 어떤 역할을 하길래 시장이 출렁거리며 급변했던 것일까요? 옆 나라 채권의 가격 문제가 왜 한국 경제를 전망하는 지표로 쓰일까요? 일본의 문제가 왜 환율 문제로 이어질까요? 그리고 한국의 수출입 변화량은 왜 문제가 되는걸까요?
1. 채권 수익률? 왜 그걸 통제해요?
YCC란 일본 은행이 일본 국채 장기물(10년물)을 매입, 국채의 가격을 방어하는 정책을 말합니다. 우리는 과거 몇 편의 뉴스레터에서 만기 시 채권의 가치는 고정되어 있으니, 채권의 수익률이란 결국 액면가와 반비례한다는걸 확인할 바 있습니다.
채권의 만기 가치(고정된 값) - 채권의 현재 액면가 = 채권의 기대 수익률
그렇게 해서 단기물 채권과 장기물 채권의 수익률을 적당한 선에서 조절하는거죠. 그렇다면 BoJ는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요? 바로 1990년 이후 일본이 겪은 긴 경기침체인 ‘잃어버린 10년’ 때문입니다.
경제가 성장 하면 시장에 돈이 풀립니다. 하지만 이를 억지로 돌려서 시장에 돈을 풀어버리면 경제가 성장하는 것 같은 효과가 나타납니다. 지난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건때 있었던 헬리콥터 머니를 생각해보면 쉽습니다.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베 신조 전 수상의 ‘세 개의 화살’ 정책을 비롯해서 지속적인 완화책을 펴 왔습니다. 제로 금리를 넘어 마이너스 금리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금리를 내려가면서까지 시장에 억지로 유동성을 공급해서 부동산과 주식등 자산의 가치를 방어한거죠. 일본은행은 이를 수행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YCC를 택했습니다. 직접 10년물 국채를 매입해서 가격을 방어, 수익률을 일정 수치가 될 때 까지 떨어뜨린겁니다. 이를 「지정가 오퍼레이션3」 이라 부르는데, 이번 1월에만 BoJ는 164조원에 달하는 국채를 매입4할 정도였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생겼습니다. 더 이상 이 정책을 해서 방어할 상황이 아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속적인 유동성 공급으로 엔화의 가치가 절하되면서 생긴 장기 엔저와 코로나 팬대믹 이후의 국제적 인플레이션,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팬대믹으로 인한 중국의 락다운 등 다양한 물가 상승 압박이 겹치며 이미 일본은 지난 10월 경부터 ‘인플레의 가을’이라 불릴 정도로 심각한 물가 문제5를 겪고 있습니다.
BoJ는 민간을 동원해서까지 국채수익률 곡선을 지속적으로 통제하려고 하고 있는데6, 이는 가뜩이나 적자국채 발행량이 많아 취약해진 일본의 정부 재정 상황을 악화7시키는 한편, 지나치게 경색된 10년물 금리 때문에 표면 금리가 낮아 민간이 들어올 유인 자체가 적습니다. 이러다보니 월가를 비롯한 다양한 경제주체들은 일본의 이런 정책이 더 이상 지속되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8. 심지어 채권 급락의 형태로 리스크 부작용은 언젠가 나올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죠.
2. BoJ와 월가의 한판 승부, 그리고 시장은 다시 원위치로
지난 12월에 있었던 YCC 상한 조절 이후 BoJ는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상한선 증가에 대해 “이는 양적완화의 지속가능성을 강화하기 위한 의도9”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시장은 이런 행보가 일본은행이 초저금리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보라고 예측하면서 일본 국채를 모조리 내다팔기 시작했습니다. 외국인 투자자가 12월 17일부터 23일까지 팔아치운 일본 국채만 약 48조원(4.8조엔)에 달할 정도10였죠.
그리고 며칠 전인 1월 13일에는 BoJ가 하루에만 5조엔어치의 10년물 순매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마어마한 매도물량이 쌓여서 국채수익률이 순식간에 0.54%로 치솟았고, 통제되지 않는 3년물과 같은 단기물은 거의 50% 상승을 기록11하기도 했습니다. 외환시장도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달러-엔은 순식간에 하락12하기도 했습니다.
오는 4월 임기가 만료되는 BoJ의 구로다(黒田東彦,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의 후임이 더 이상 YCC 정책을 유지하지 못할거라는 시장의 배팅은 의외로 싱겁게 진압되었습니다. 1월 18일, BoJ가 통화정책을 유지하겠다는 발표 이후 엔화는 다시 하락해서 달러-엔은 다시 제 위치를 찾았고, 꾸준히 자금이 유입될것이라는 기대감에 증시는 순간적으로 재상승13했습니다. 엔화의 멸망을 기대하며 설레발치던 사람들만 닭 쫓던 개가 된 셈입니다.
문제는 이 방어를 수행하면서 17조엔에 달할 정도로 급속도로 대량의 실탄을 소모14, BoJ의 펀더멘탈이 약해졌다는 전망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거기다 더해 일본의 상환부담은 더욱 빠른 속도로 악화되게 되었습니다. 인플레이션 전망 역시 나쁘게 작용하고 있으며, 연준이 매파적 정책을 취하면 취했지 금리 인하에 나서진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지배적인 가운데 일본의 이런 유동성 공급 전략이 언제까지 이어질지에 대해서 이번의 금리 및 YCC 정책 유지 발표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투자자들은 회의감을 표하는 분위기입니다.
3. 일본 문제가 왜 한국 문제로 전이되나? 가치 사슬의 함
문제는 ‘일본이 공급하는 자금이 어디에 쓰이고 있는가’입니다. 일본의 의도는 공급한 유동성이 내수시장에서 적절히 돌아, 억지로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면서 장기간에 걸친 디플레이션15을 깨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잃어버린 10년의 핵심은 지속적으로 가격이 하락하고 돈의 가치가 오르는 디플레이션이었는데요.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통화가치의 하락보다 자산이나 상품 가격의 하락 속도가 빨라서 가만히 있어도 물가가 내려가는 현상이 생기면서 사람들은 소비를 미루게 되었습니다. 내수가 굳어가고 시장에 돈이 돌지 않으니 침체는 더욱 심화된거고, BoJ의 완화 정책은 바로 이를 해소하기 위함16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자금은 ‘엔 캐리 트레이드’ 용도로 대거 빠져나갔습니다. 엔 캐리 트레이드(Yen-Carry Trade)란, 금리가 낮은 일본에서 돈을 빌려다가 다른 나라에 투자하는 것을 일컫는데요. 대표적인 사례로 “와타나베 부인” 사례가 있었습니다. 2005년 호주와 뉴질랜드 기준금리는 6%였는데, 일본에서 돈을 0% 이자율로 빌려다가 호주에 저축하는것만으로 금리만큼의 이득을 챙길 수 있었던거죠.
문제는 이런 엔 캐리 트레이드는 일본에서만 볼 수 있었던 극단적 저금리때문이었는데, 실제 2022년 11월 일본의 CPI가 3.7% 상승(MoM) 했더는 것을 고려했을 때, 일본이 YCC를 폐기하고 금리 상승의 길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게 전망되면서 캐리 트레이드 역시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투자자들이 품게 되었다는 것17입니다.
특히나 같은 미국 시장을 목표로 하는데다 가까운 거리 때문에 가치 사슬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일본 자금 시장의 이런 변동은 달러 환율에 영향을 주고, 이어서 원화 환율에도 영향을 줄 수 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일본의 투자자들이 캐리 트레이드로 매입한 미국 자산만 3조 달러 규모18에 이르는데, 이런 해외투자 자금이 청산되면 세계적인 금융불안이 일어날 가능성19이 큽니다.
호경기 상황에서 캐리 자금이 서서히 청산되는 것 자체는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지금처럼 경기가 불안한 상황에서 미국 채권의 신용을 다시 시험할만한 대규모 투매가 발생하면 리스크가 현실화 될 가능성이 커지는 셈이죠. 무엇보다 이런 시장 상황이 자연스럽게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없는 것도 문제2021입니다.
모하메드 엘 에리언 알리안츠 선임고문은 “BOJ가 국채를 더 사면 살수록 시장 생태계가 무너진다. 단기적으로는 가능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문제”라며 “이번 조치가 다른 국가의 국채금리를 밀어올릴 수 있다”라고 봤습니다. 실제 채권 투자 전문가 빌 그로스는 “금융시장에 잠재적인 혼란이 있다”고 지적22한 바 있습니다. 또한 뉴욕라이프인베스트먼트의 로웬 굿윈 전략가는 “영국 국채시장의 혼란과 이번 일본 금융 시장 사이에는 섬뜩한 유사점이 있다”고 지적23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이 우려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아래와 같습니다.
BoJ 10년물 국채금리 변동폭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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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금리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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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투자 자금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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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국 국채금리 상승 및 증시 하락 요인
4. 세계 경제의 카나리아 한국, 앞으로의 미래는?
카나리아는 일산화탄소에 매우 민감합니다. 1890년대 광산에서 일하던 광부들은 이런 카나리아가 있는 새장을 들고 다니면서 갱도에서 언제 탈출할지를 알아보곤 했습니다.
한국 경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역 의존도가 매우 높고, 주요 무역 상대국이 미/중/일/EU 등 세계 경제에 꽤나 큰 역할을 하는 국가들인데다, 수출입품 항목 중에서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중간재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무엇보다 통계가 매우 빠르게 공개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계 경제의 카나리아란 이야기를 듣고 있죠.
그 카나리아가 울고24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심상치 않던 무역 수지는 어느새 큰 적자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블룸버그를 위시한 외신 및 전문가들은 이런 한국의 무역 수지 적자 및 규모 감소를 세계 경제 둔화의 심각한 전조25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실제 한국 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올해 무역 둔화는 큰 경기 침체의 전조가 아니냐는 우려26를 낳고 있습니다.
한국 상황은 꽤나 좋지 않습니다. 레고랜드 사건이 지금까지 견고하다고 알려졌던 국채/지방채 크레디트 시장마저도 의사결정권자의 한 마디 발언에 의해 극도로 취약하게 바뀔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줬습니다. 금융당국이 수십조를 투자하겠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5년 만기 AAA급 회사채 시장이 중국/인도네시아의 동일 등급 채권에 비해 훨씬 빨리 붕괴했다는 점에서 이런 리스크는 이미 시장 전체로 전이되었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또 있습니다. 불패로 불렸던 부동산 신화는 엄청난 부양책을 받고도서도 좀처럼 살아날 느낌을 주지 못합니다. 한국 뿐 아니라 중국, 유럽, 미국에서도 부동산 리스크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1750억 달러에 대한 부동산 신용이 이미 부실에 빠진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문제는 주택시장에서 상업용 부동산으로 전이되고 있는데, MSCI의 자료에 따르면 영국 상업용 부동산 가치는 이미 20% 이상 하락27했을 정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BoJ의 포지션 변환이 낳을 수 있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의 일본으로의 재흡수는 기껏 경기를 부양하고 있던 자금마저 썰물같이 빠져나가게 할 위험성이 있습니다. 미 국채 뿐 아니라 곳곳에서 매물들이 쏟아져나오리라 추측할 수 있죠. 최근 유상증자를 실시한 롯데건설도 여의도 일각에서는 일본의 단기 자금으로 겨우 회복했다는 말이 있는데요. 만일 이 루머가 사실이라면 일본 자금이 급격히 빠져나가면 이런 기업들 조차도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대변혁의 시대를 겪고 있습니다. 코로나 팬대믹 이후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는 저금리 시대와 유동성 축제에 종언을 고하고, 새로운 질서를 찾아나가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 와중 우리가 지금까지 당연하게 생각했던 수많은 금융 질서들은 이제 옛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투자회사인 블랙락 역시 주간 경제 동향28에서 “불경기가 오면 연준이 기준 금리를 낮춰 주리라는 옛 질서에 얽매이지 말 것”을 주문한 바 있습니다. 우리는 길어질 수도 있는 시기에 적응하고, 피해를 완화할 수 있도록 소비생활부터 변모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기회는 언젠가 찾아옵니다. 지금은 기회 전에 찾아오는 격렬한 파도가 세상을 뒤덮고 있을 때입니다. 이 파도에 쓸려가지 않도록 몸을 낮추는 것 역시 훌륭한 투자 전략이 될 것입니다. 조급해하지 마시고, 긴 안목으로 시장을 바라보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좋은 밤 되세요. 그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07년 1조 달러 규모에서 2022년 3조 달러 규모까지 급증했습니다.
<South Korea's Canary Sings>
https://www.flexport.com/research/south-koreas-canary-sings-flexport-weekly-economic-repo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