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민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 중요한 판결이 하나 내려졌다. 이번 글은 이 판결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왜 이 판결이 중요한지 얘기해보도록 하겠다.
대한민국의 의료를 누가 가장 좋아하는가?
지난번 글에서도 잠깐 다뤘지만, 대한민국의 의료관광 시장은 결코 작은 편이 아니다. 특히나, 이 대한민국의 의료를 매우 좋아하는 두 나라가 있다. 바로 중국과 러시아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대한민국에 비해 덩치가 크고 국력이 센 것은 사실이나, 그들에게도 없는 것이 있으니 바로 대한민국의 선진의료시스템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모두 구 공산권 국가였고 (주 : 지금도 중국의 집권당은 공산당이나, 중국은 공산당이 독재하는(!) 자본주의 국가로 봄이 타당하다. 주식시장이 있고 사유재산이 허용되는 공산국가는 없다.) 공산주의의 해체 이후 심각한 경제적 양극화를 겪고있다. 이 이야기는 곧 두 나라가 의료에 있어서도 심각한 양극화를 겪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두 나라의 지독할 정도로 넓은 땅덩어리는 의료 접근성에 악영향을 미친다. 의료 접근성이란, 내가 아플때 원하는 병원에서 원하는 만큼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느냐는 개념을 의미한다. 한국사람들의 투덜댐과는 별개로 대한민국의 의료접근성은 압도적인 세계 최고이다. 전세계 어디에도 당일 진료 예약으로 전문의를 만나는 나라는 없다.
따라서 의료 접근성 자체가 떨어지는 중국이나 러시아에서, 의료 접근성이 압도적 세계 최강인 대한민국의 의료 인프라는 너무나 매력적일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비용도 매우 저렴한 축에 속한다. 대한민국 국민들에게야 의료보험이 없는 진료비(이걸 100/100 즉, 보험공단의 수가를 100%로 환산한 값이다)도 어마어마하게 비싸 보일것이며, 실제 여기에 적정이윤(!)이 추가된 비보험가(이 가격이 외국인에게 받는 비용이다)를 보면 뒷목을 잡고 쓰러질 가격이지만, 놀랍게도 중국/러시아의 의료비는 이거보다 훨씬 더 비싸다.
진료비 뿐 아니라, 여전히 중국/러시아에서는 의사들이나 병원 직원들에게 소위 급행료(!)라는 이름의 뇌물 수수가 성행하고 있고, 이후에 수술을 하고 나면 수술 사례금(!)도 따로 지급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이미 수십년 전에 근절되었고, 이제는 김영란법에 따라서 단순 청탁조차도 문제가 되는 마당에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매우 놀랄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제도와 투명성 덕에, 한국의 의사들은 좀 대우가 부족하다고 느낄지도 모르지만, 그 이상으로 믿을 수 있고 양심적인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외국인들, 특히 중국인들이 하고 있다. 믿고 쓰는 한국산 의사라는 이야기이다.
2. 만만치 않은 한국의 의료법
몇 차레 언급했던 것처럼, 한국의 의료법은 상당히 촘촘하고 강력한 시스템을 통해 조율된다. 물론 성추행범이나 성폭력사범을 때려잡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는 동감하지만, 전반적으로 많은 부분에서 생각보다 많이 의사들의 타락을 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
즉, 의사들이 함부로 타락하지 못하게 규제하는 만큼, 의료법은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의료인이 진료에 전념할 수 있게 외부의 개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이제 무슨 얘기가 나올지 감이 잡힐 것이다. 바로 영리법인 이야기다.
한국의 의료시스템은 분명 매력적이지만, 의료법인을 세워서 만든 돈을 빼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한국의 의료 인프라를 누리는 것은 자유이나, 거기에서 돈을 벌어가기까지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녹지병원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3. 녹지병원이 뭔데?
대한민국은 작은 나라지만, 도처에 수많은 특별 자치구들이 존재한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제주특별자치도다. 농업 이외의 특별한 기간산업, 특히 제조업이 자리잡기 힘든 제주도의 특성상, 제주도는 관광에 많은 돈을 투자할 수 밖에 없다. 그 연장선상에서 나온 병원이 바로 녹지병원이다. 중국의 부동산 업체인 녹지그룹이 휴양지와 함께 병원을 만들어 고급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목적으로 세운 병원이 바로 녹지병원인 것이다.
이 설명만 들으면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싶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따져보기 시작하면 이 병원은 설립부터가 문제인 병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4. 녹지병원을 둘러싼 문제들.
녹지병원은 중국의 부동산회자의 ‘투자’를 받아서 지어지는 병원이라고 했다. 즉, 녹지그룹이 녹지병원의 소유권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병원의 소유주가 녹지그룹이 되기 위해서는 바로 앞서 말한 ‘영리법인’의 형태를 띄어야 한다. 물론 녹지그룹의 회장님이 한국을 너무너무 좋아해서(?) 한국에 ‘녹지생명공익재단’을 만들고, 녹지의료원을 설립해서 한국의 병원산업을 발전시키려고 한다면 매우 고마운 일이지만,
그럴리가 없지 않은가.
또한, 이렇게 생각할수도 있다. 그럼 병원 수익은 내버려두고, 호텔이나 관광지 수입을 돈을 벌면 되는 것 아니야?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다시피 한국에서 병원은 돈을 벌 수 있는 부대사업이 제한되어 있다. 녹지병원이 일반적인 외국인 진료를 본다면 모를까, 호텔이나 휴양지 관광에 병원 진료를 패키지로 묶어 파는 것은 위법의 소지가 다분한 일이다. 당연히 금지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결국, 이 얽힌 실타래를 풀려면, 녹지병원은 영리법인일 수 밖에 없고 영리법인이어야만 했다. 그리고, 이 녹지병원의 영리법인 허가를 쥐고 있는 사람은 바로 제주특별자치도지사였다.
5. 갑자기 나오는 세븐럭 카지노 이야기.
서울 삼성동 코엑스 센터 옆에는 오크우드 호텔이 있고, 그 호텔 바로 옆에는 세븐럭 카지노가 있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정선 강원랜드 카지노외에는 출입이 금지되어있다. 이 카지노는 대한민국 국민의 출입을 엄격하게 제한한다1.
어라? 그럼 녹지병원도 그렇게 하면 되는 것 아냐? 그렇게 하면 뭐가 문제지?
이런 생각에 다다른 제주도는 세븐럭 카지노와 같은 방식으로 내국인의 출입을 엄격히 제한한다는 조건 하에 녹지병원의 설립 허가를 내 주게 된다. 즉, 철저하게 외국인의 진료만을 보는 조건으로, 녹지병원의 법인을 허가했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6. 모두가 해피엔딩일까?
문제는 이 곳이 카지노가 아니라 병원이라는 데에 있다. 다른 법률과 달리, 의료법은 규제사항이 많고 까다롭기로 악명 높은데, 실제로 병원을 설립하고 진료를 하려다 보니 다음과 같은 문제에 다다르게 된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녹지병원에 방문하려는 외국인이, 대한민국의 건강보험이 있는 경우이다.
대한민국의 건강보험은, 이 땅에 발을 디디면 적용이 되기 시작한다고 했다. 즉 외국인이라도 합법적인 체류 상태에서 건강보험료를 지불하면 건강보험의 혜택을 모두 다 받을 수 있다. 즉, 아무리 영리법인이라고 해도, 녹지병원은 당연지정제의 손길을 피해 갈 수 없다. 따라서 녹지병원은 건강보험에 가입하고, 건강보험 환자의 진료를 보아야 한다. 이 것이 첫 번째 문제다.
안 받으면 되지 않나? 라고 되물을 수도 있다. 이번 판결의 쟁점도 비슷한데, 한국땅에 세워진 병원은, 자기 능력이 되는 한에서는 반드시 환자의 진료를 하여야 한다. 즉 ‘우리는 건보가 없는 외국인만 받는데요?’ 하고 환자를 퇴짜 놓을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내가 수술실이 없어서 수술을 못하거나, 밤에 수술할 의사가 없어서 수술을 못하거나, 아님 진료시간이 아니어서 진료를 못할지언정, 오는 환자를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당연히 의료보험이 있다는 이유로 환자를 거부할 수는 없다.
같은 맥락에서, 환자에게 ‘그럼 우리 병원에서만큼은 의료보험 적용없이 비보험 진료를 받으시면 됩니다’ 라고 하는 것도 불법이다. 이것을 ‘임의비급여’ 라고 하고 국가는 임의비급여를 굉장히 중대한 의료법 위반이라고 생각한다.
7. 이번 판결 이야기.
이번 판결은, 그 다음 문제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물론 제주도지사가, ‘외국인에 한해서 진료한다’ 라고 허가를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러면 녹지병원을 찾아오는 내국인의 진료를 거부할 수 있을까?
이번 판결은 역시나 ‘정당한 이유 없이, 녹지병원을 찾아오는 내국인 환자를 진료 거부하여서는 안된다’ 라는 판결이다. 즉, 이 판결로 인해서 앞서 논의되었던 영리법인의 보호장치가 상당부분 무력화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이야기이다.
8. 전망
이번 판결로 인해서, 바로 의료민영화가 성큼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도 안되는 것이다. 오히려 이번 판결은, 외국인만을 진료하는 병원을 만들어 의료법을 우회하려는 시도 자체는 더 이상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선례를 남긴 셈이 되었다.
우리는, 의료관광을 활성화 시키면서도, 의료민영화를 성공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다음 주제는, 도대체 소아과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이다. 다음 글로 찾아뵙겠다.
도박과 복표에 관한 법률에 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