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네 번에 걸친 대선을 치르면서 우리는 두 가지 현상을 목격했습니다. 연령상으로 이제 레드컴플렉스가 대부분 해소되어야 할 60대 이상의 유권자층이 압도적으로 ‘집 값 심판’이라는 명목으로 네 번 중 세 번 보수정부를 선택했다는 점입니다.
“민주당 정부의 실정으로 집 값이 너무 올라서 살 수가 없게 되어서 국민의힘(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에 투표한 것이다.”
언론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이상합니다.
주택시장도 일종의 자산시장이라, 수요와 공급이라는 국내 사정에 의해 영향받는 만큼 전체적으로 증가한 유동성에 의한 국제적 사정에 의한 영향도 상당히 크게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경기가 호황이라 시장에 돈이 풀리면 부동산도 오르고, 그 반대라면 부동산도 주춤하거나 내리는 식이죠. 다만 지금까지 우리 경제는 여러 번의 충격 속에서도 꾸준히 성장을 반복해 왔기 때문에 큰 틀에서 보자면 부동산은 오를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거랑 보수정권이랑 무슨 관계가 있길래 60대는 보수정권을 자기들의 유일한 동아줄로 선택해서 몰표를 준 것일까요? 이 모든 것은 IMF 이후로 시계를 되돌려야 비로소 힌트가 보이게 됩니다.
IMF 이전과 이후를 비교했을 때,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바로 ‘대기업의 종신고용’이라는 명제가 붕괴했다는 점입니다. 과거 일본의 재벌 대기업인 케이레츠(系列)의 기업 운용을 따라 다각화를 추구했던 한국의 기업들이 IMF 이후 구조조정을 당하면서 붕괴하자, 더 이상 거기 매달려 있던 고용자들을 감당할 수 없게 된 것이죠.
그 이후 대한민국에서의 재태크에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불게 됩니다. 바로 노후대비죠. 국민연금의 실시가 2006년부터 전 국민으로 확대되었고 민간 연금보험보다 우월했지만, 문제는 당시 있었던 연금개혁이었습니다. 전 국민 확대를 하는 과정에 소득대체율을 60%에서 40%로 끌어내렸던거죠. 원래 100만원을 내면 70만원의 연금을 받을 수 있다고 하다가 98년에 60만원으로 한번 깎이더니 IMF 이후에는 갑자기 40만원밖에 못 받게 되니까 모두들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물론 이건 당시 정부, 그리고 실행자인 유시만 보건복지부 장관만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당시 상대 이회창 후보 역시 연금 지급액을 월 급여의 40%로 깎아야 한다고 공약했었죠. 1998년 연금법 개정 시에도 40% 안이 있었으나, 국회에서 60%로 고정했습니다. 이 전에도 국민연금이 고갈될 것이라는 분석은 곳곳에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 2003년 당시 중앙일보는 기금이 2047년이면 고갈된다며 보험요율을 대폭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깎을 것을 주문1했었는데, 2019년에는 국민을 거스른 노무현 운운2한게 좀 웃기는 부분입니다.
여튼 이런 상황에서 퇴직금을 잔뜩 들고 나온 이들은 무언가 돈벌이를 할 것을 필요로 하게 되고, 그 때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 (프랜차이즈) 자영업이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되었습니다.
한 때 유행한 ‘치킨집 사장님이 코딩의 달인’ 같은 자학개그는 사실 이 시기에 기승전 치킨집으로 시작한 사회를 풍자한데서 출발했는데요. 당시 한국 사회는 가뜩이나 탈공업화 중심의 산업구조로 이행하고 있던 상황에서 IMF로 인한 갑작스런 고용시장의 붕괴까지 겪다보니 영세자영업자들의 붕괴에 유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비정규직과 저부가가치서비스 업 창업지원 정책 등으로 탈공업화를 대응3해왔고, 이러한 정책은 실업률을 낮추었으나 후에 영세자영업자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는 문제4를 낳았습니다. 폭탄을 뒤로 돌린거죠.
그 상황에서 이런 퇴직금을 가진 명퇴자를 대상으로 한 각종 사기가 발생합니다. 사이버리아 사기5는 빙산의 일각이었죠. 놀랍게도 일본에서도 이 시기 비슷한 사기가 판을 쳤습니다. 만화 ‘쿠로사기(한국정발명 검은사기)’에 이런 이야기가 잘 묘사되어 있죠.
하지만 자영업이라는게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소득이 항상 안정적이지도 않고요. 자영업자가 기존 직장의 월급 대비 대략 10배에 달하는 돈을 매출로 거둬들여도 실제 자기 손에 남는건 백만원도 안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특히 프랜차이즈는 더더욱 심하죠6.
이 때 새롭게 부상한 것이 부동산이었습니다. 참여정부 중기, 수면 아래에서는 이전부터 급증한 자영업자들이 계속 쌓이면서 폭탄의 심지가 타들어가고 있었으나 겉으로는 한참 IMF 회복이라는 장밋빛 전망에 힘입어 경제 규모는 커지고 있었습니다.
이 때 IMF 시기 각종 지역 건설사들의 폐업으로 인해 공급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던 부동산이 가장 먼저 영향을 받았습니다. 특히나 이들 지방 건설사를 흡수한 대기업 건설사들이 2000년을 전후로 “프리미엄 아파트 단지”로 마케팅한 래미안(삼성물산), 자이(GS건설), 롯데캐슬(롯데건설), 힐스테이트(현대건설), 아이파크(현대산업개발, HDC) 등이 경쟁적으로 출범했죠.
2002년(완공은 2004년)에 그 정점을 찍은 타워팰리스였습니다. 대세상승중이던 부동산에 대기업 브랜드 아파트라는 프리미엄까지 붙으며 새로운 부의 상징이자 삶의 목표화가 되어버립니다. 그 안에서는 일종의 단지 내 커뮤니티가 구성7되며 ‘진짜 부자의 커뮤니티 라이프’를 체험할 수 있는 장이 열리게 됩니다. 이후 이들 커뮤니티는 교육에서 다시 한번 큰 문제를 겪게 되는데, 그건 다음에 다루기로 하죠.
특히나 이런 사업들은 종래 구축 아파트들을 부수고 올린 재건축 단지였는데요. 이러면서 한국에는 아파트 재건축, 혹은 목 좋은 곳에 빌라를 통한 알박기 등 재건축 로또의 부동산 붐이 일어나게 됩니다. 당시 참여정부는 다양한 규제와 세제를 통해 압박을 하였으나 이는 역효과로 작용했습니다.
‘너네가 내가 먹고 살거 책임 질거냐’
‘국가 때문에 직장에서도 해고당했다’
‘너네가 내가 살 집도 비싸게 만들었다’
조중동을 비롯한 기성언론에서는 이런 조세저항 심리와 주거불안정 문제를 집중적으로 공격했고, 결국 참여정부는 심각한 레임덕에 휩싸이며 한국은 다시 민정계의 적통, 범보수계인 이명박 정부에게 키를 넘겨주게 됩니다.
그 시기의 부동산 심판론은 지금과는 궤가 달랐습니다. 점점 프리미엄 아파트가 상승하는 상황에서, LTV와 DTI를 제한하는데도 불구하고 은평 뉴타운이 평당 1500만원에 분양되고 은행이 70~80% 이상 융자를 해주니 서울 일대의 중소형 주택까지 가격 상승 압박을 강하게 받았8던거죠.
거기다 지방선거에서 보유세와 양도소득세를 풀고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그 때나 지금이나 바뀐게 별로 없습니다.) 한나라당이 승리하면서 부동산 대세상승론이 더더욱 심각하게 굳어졌고, ‘정부 여당은 끝났기 때문에 가격이 더 오를 것이다’ 라는 인식이 가격을 더더욱 올렸습니다.
참여정부는 불황기에 경기부양책을 쓰지 않은 것, 보유세 형평 추진 및 강화와 거래세 인하, 부동산 과다 보유자 양도세 강화, 부동산 거래 투명성 제고, 서민용 장기임대주택 확대, 토지소유분포통계 공개 등 거시적으로 옳은 정책은 많았으나, 부동산 투기로 자금이 몰리는 것을 완전히 막지 못했습니다.
타워팰리스와 고급 아파트들이 보인 ‘단지 내 커뮤니티’ 구성에서 보이는 주거 구조의 변화 부동산 가격이 상승했고 본질적으로 IMF 이후 주거를 비롯해서 생존 자체에 위협을 겪게 된 수많은 사람들이 이반하게 되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이런 상황에서 집권을 하게 된 것입니다.
‘가격 안정’과 ‘거래 활성화’라는 상충되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한 것인데요, 실제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로 인해 대세하락기가 찾아오자 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이것과는 다르게 움직이게 됩니다. 사실 그냥 생각해봐도 주택이라는 재산에 대한 (단기 차익)거래가 늘어난다는건, 시세 변동이 심하다는 거고, 차익을 노리는 사람이 많아진다는건데 가격 안정을 목표한다니 앞뒤가 안맞는 이야기죠.
지금까지 끓어오르던 부동산에 대한 열망과 IMF 이후 사람들의 생존, 그리고 내 집 마련에 대한 본질적 공포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다음 편부터는 이들이 어떻게 부동산 투기 시장으로 들어와서, 생존형 부동산인 ‘도시형 생활주택’에 유입되게 되며, 이들이 어떻게 보수정부의 열성적 옹위자가 되었는지를 다루어 보겠습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130082#home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252362#home
이일영(2005), “동북아 국가와의 무역이 한국의 고용에 미치는 효과 : 1995-2000,” 동북아경제연 구, 제17권 제2호, 1-24.
신동주, 최배근.(2018).우리나라 영세자영업자 증가의 원인.산업경제연구,31(5),1831-1856.
https://imnews.imbc.com/replay/2003/nwdesk/article/1900836_30767.html
https://magazine.hankyung.com/business/article/202102246202b
http://biz.heraldcorp.com/view.php?ud=20120518000080
http://archives.knowhow.or.kr/m/record/book/view/18625?pag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