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미래를 이해하기 위해선 정치와 경제 두 점에 걸친 이해가 필요합니다. 중국은 당(정치)을 통해 강력하게 R&D를 드라이브했고, 거기서 나오는 고용창출과 성장으로 다시 당이 강성해지는 선순환을 지금까지 맛봐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도 단일체라 보기는 애매합니다. 역사결의 이후 많은 것이 달라지긴 했지만, 중국의 정치는 크게 태자당과 공청단, 그리고 상해방이라는 3개의 축이 있었습니다. 이 축의 이합집산과 변모, 거기서 나오는 첨단(尖端)이 누구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국의 복잡한 정치, 경제를 파악해 들어가는 아리아드네의 실이 됩니다.
먼저 정치를 짚어보자면
중국의 정치세력은 한국의 정당이나 일본의 파벌과 그 궤가 다릅니다. 인맥으로 얽힌 애증어린 협조관계인데, 때로는 붙었다, 때로는 떨어졌다를 반복하지만 외세 앞에는 단결하는 유동성과 중국인 특유의 집합성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아니 했었습니다. 역사결의 전후 시진핑을 중심으로 많은 것이 변화했지만, 그래도 그 역사를 짚어봐야 시진핑 집권의 미래도 알 수 있겠죠.
고위층 인사들 자녀 집합인 태자당
후진타오를 중심으로 한 중국 공산주의 청년단, 약칭 공청단
상해를 중심으로 한 상인 세력, 상해방
원래 시진핑(習近平)은 태자당과 상해방의 연합대표선수 비슷한 느낌1이었습니다. 후진타오(胡锦涛)가 슬슬 권력 종점에 도달하자, 수많은 이들이 차기를 위해 나타났는데요. 이 때 나타난 것이 충칭 서기 보시라이(薄熙來)였습니다.
보시라이는 창홍타흑(唱紅打黑)이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부패사범과 폭력사범을 체포했습니다. 이것이 타흑(打黑)이죠. 검게 물든 자들을 물리친다는 말입니다. 또한 원래의 공산주의로 돌아가자면서 임대주택 정책과 같은 분배 강조 목소리를 냅니다. 이것이 창홍(唱紅)입니다. 당연히 도시빈민, 저소득층으로부터 격한 환영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충칭 모델’, '차이나 컨센서스'라 불리는 대중영합적인 행보인데요. 지금까지의 다른 중국 정치인에 비해 극단적인 대중 영합정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포퓰리즘에 가까워보이는 그 선을 살짝살짝 넘으면서 인민에게 직접적으로 자기를 어필했었죠.
당연히 다른 세력에겐 이게 좋게 보일리가 없었죠. 아이러니하게 공산혁명을 통해 일어난 중화인민공화국은, 혁명을 막기 위해 보시라이를 축출하게 됩니다. 당시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보시라이의 창홍타흑이 "인민을 선동하여 중국 공산당의 체계를 망가뜨리는" 문화대혁명과 같은 행위라고 극렬한 공격을 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원로였던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이 개입하면서 무기징역으로 마무리 되었죠. 사형 판결이 났었는데, 그 즉시 목숨이 당장 날아가지 않은게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태자당 내 가장 강력한 축 중 하나인 보시라이는 이렇게 잘려나갔습니다. 결과적으로 권력은 시진핑 당시 부주석에게로 모조리 집중되었고, 당시 주석 후진타오는 명예로운 퇴진이라는 이름으로 결국 권력을 이양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시진핑은 보시라이를 짜르기 위해 상해방을 이용했고, 그게 성공한 셈이 되었죠. 하지만 이것
예상대로 토사구팽이 일어났습니다. 시진핑은 예상대로 태자당을 잘라버립니다. 자기 패거리가 아닌 도련님들의 싹을 남겨둘 수 없다는거죠. 태자당에 연루된 금융사의 경영권을 박탈해 국유화를 가하는 등 탈 태자당을 수행하며 지강신군, 혹은 시파라 불리는 파벌을 형성하게 됩니다.
실제 2017년 말 선출된 상무위원 배분을 보면 리커창(공), 리잔수(시), 왕양(공), 왕후닝(상), 자오러지(시/상), 한정(상)인데요. 태자당이 싹 쓸려나가버리고 최근 등장한 리커창을 제외하면 사실상 시파와 상해방의 연합정권인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공청단의 재등장입니다. 이건 2016년 공청단과 상해방이 손을 잡은 결과인데, 이러면서 시진핑에게 남은 것은 지강신군 하나밖에 없는 결과가 되어버린거죠.
중국의 정치사는 결국 주석을 견제하는 두 세력인데, 자기의 세력을 날리고 새 부대를 짜는, 리빌딩 중의 시진핑은 매우 만만한 먹잇감이 되었다고 판단했던거죠. 공청단과 상해방은 COVID-19와 홍수 카드로 시진핑을 극딜하기 시작했습니다. 후진타오가 장쩌민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진핑과 태자당을 끌어들였다가 보시라이와 함께 정계에서 밀려난것 처럼, 시진핑 역시 비슷한 전철을 밟고 있었죠.
리커창은 상무회의에서 일대일로를 대놓고 디스하면서 고개를 들이밀었고, 대만을 주 세력권으로 가진 한정 역시 머리를 들이밀고, 왕양까지 미중 무역전쟁 이슈로 공격을 하며 시진핑을 흔들었습니다. 자오러지는 시파라고 알려져 있었으나 친상해방적 행보로 급격히 갈아타는 중이었죠. 어찌어찌 2018년 개헌을 이루기 위해 시진핑은 짜투리 태자당 자리를 던져주고 3연임 개헌까진 했지만, 코로나 팬대믹과 홍수, 미-중 무역분쟁을 막기는 힘들었습니다.
문제는 이 미중무역분쟁 과정 속에 코로나 팬대믹이 미국과 유럽에 커다란 상처를 입히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합의라는 형태로 굽히고2 들어올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엄밀하게는 코로나가 심각해지면서 양 국 모두 다 죽어갈 상황인지라, 일시적인 휴전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거지만요. 덕분에 시진핑의 주가는 한도 끝도 없이 떡상하게 되고, 유일한 대항마라 불리던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전인대(전국 인민 대표 대회) 회의에서조차 별 다른 발언을 하지 않으면서 조용히 기는 모습3을 보입니다.
그렇게 시진핑은 역사결의까지 도입하게 됩니다. 역사결의 선언은 중국에 지금까지 2명밖에 없었는데요. 모택동, 등소평에 이어 시진핑이 올라섰다는 것은 그만큼 미국에 대해 중국이 갖고 있던 심리를 끊어 낸, 굉장히 강력한 신호였다고 봐도 되죠. 시진핑이 실각하지 않는 한, 당분간 이 권력의 모멘텀은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게, 중국의 확장을 경계하며 가장 공격했던 트럼프 행정부가 오히려 그 패권주의적 확장을 내세우는 정권이 강고해지는데 가장 크게 공헌해버린 셈입니다.
두 번째로 볼 만한 것은 경제인데,
중국의 경제를 알려면 정치의 3파벌처럼 크게 3가지를 체크해야 합니다. 현물, 인건비, 그리고 투자죠.
현물은 금과 달러(+채권)인데, 전통적으로 금을 선호한 부분도 있지만, 안전자산 취급을 더욱 강력하게 받아 중국인들은 경기가 흔들릴때마다 개인들까지 금을 긁어댔습니다. 통계에 투명하게 알려지지 않은 금을 다 제끼고 순수 보유량만 보더라도 기축통화국인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영/프/독/이 정도는 충분히 따라갈 정도로 치고 올라왔습니다. 그 뿐 아니라 달러, 미국 국채, 주요 달러기반 회사채 수집 역시 어마어마합니다 당이나 국가 뿐 아니라 개인들까지 말이죠.
이 돈이 중국의 경제적 기초체력입니다. 일본의 전후세대 저축처럼 겉으로 확 드러나는 행동도 아니고, 한국의 금모으기처럼 들불처럼 일어나는 운동이 아니라 철저히 중국스럽게, 몰래몰래 3선인 실리선을 박박 기며 돈을 모았습니다. 자국민을 파는 듯한 이상한 행위까지 하며 돈을 모았습니다. 바둑으로 비유하자면 패망선이라 하는 2선까지 몸을 깊게 숙이며 겨우겨우 숨만 부지했죠. 정말로 중국스러운 행보를 보였죠. 이게 도광양회(韜光養晦)였습니다. 등소평의 ‘참고 기다리라’라는 대전략이었죠.
시진핑은 도광양회의 종식을 선언하고 세계에 중국의 힘을 투사하고자 하는 중국몽 전략을 취하면서 중국의 대전략은 이제 모아둔 캐시를 쓰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어마어마한 시설과 투자, 그리고 군 확장이 되었죠. 우리나라가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수출이라는 한 방향으로 몰빵했던 것처럼, 제대로 된 방향이 주어진다면 몰빵은 굉장한 리턴을 낳죠. 물론 실패하면 어마어마하게 큰 대미지를 입습니다만
두 번째 강점은 인건비인데, 저렴하게 - 때로는 학대에 가까울 정도로 - 확보한 농민공의 임금은 중국을 전세계의 공장으로 만드는데 기여했습니다. 거기서 나오는 엄청난 이윤은 다시 모두 당에 의해 현금화됨. 그 실탄들은 모두 인프라 투자와 학계 투자로 이어져서. 세 번째 힘인 R&D 투자를 만들어내었죠.
일본에서 조사된 각국 연구 논문 점유율 분석 자료를 보면, 지난 20년간 중국의 연구논문 숫자나 인용지수 증가는 눈부실 정도입니다. 화학, 재료공학, 공학, 지구과학, 수학 등 전 분야에 걸쳐 세계 탑클래스급 영향력을 들이밀고 있는데, 미국 빼고 유럽을 전부 찍어 누를 정도입니다. 이런 관이 주관해서 푸시하는 R&D의 롤모델은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입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를 통해 체질을 바꾸고 새로운 시대 먹거리를 챙긴 것처럼 말이죠.
미국이 주도하는 대중 무역 분쟁의 결말은 반도체 등의 차기 먹거리를 통제하는 것이고, 중국은 지금까지는 자기가 쌓아온 돈과 (저렴한)인건비, (R&D)투자를 통해 따라잡아 오고 있었습니다. 정말로 한 단계만 더 뛰어 넘으면 선진국이라는 빅 리그 플레이어가 되는 수준까지 왔습니다.
삼성전자는 현재 낸드 플래시와 D-RAM에서 슈퍼 을이 되어 “잠가라 낸드” 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해졌는데,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산업의 새 쌀을 독점할 수 있도록 생산 파이를 먹겠단거라고 봐야합니다. 어차피 자기들은 희토류도 있고, 인건비도 있고, 교육받은 인력도 찍어낼 수 있다는거니까요.
그래서 중국, 잘 나갈 수 있을까요?
이런 노력은 SMIC(중심국제집성전로제조유한공사)를 보면 매우 잘 드러납니다. 한때 중국 인재 빼가기가 업계에 유명해질 정도로, 심지어 좀 치사한 방법까지 쓰면서 전 세계에서 인재를 빼가면서 14nm 공정을 궤도에 올려놨습니다. “아 TSMC나 삼전은 7nm 공정이라 기술적 격차가 다르다능?”이라 할 수 있지만, 어차피 EUV패터닝이 ASML에 종속된 지금 삼전이 자력으로 도망가기만은 힘듭니다. 실제 삼성전자도 지금 2nm 신공정에서 엄청나게 죽을 쑤고 있기도 하고요.
트럼프 행정부가 초창기에는 지재권, 그리고 다음에는 화웨이를 거쳐 중국의 가장 말랑한 뱃살인 SMIC에 사시미칼을 들이밀며 “너님 죽을래요? 아니면 그만 개길래요?” 라고 묻고 있는데, 이건 바로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미국(의 이익)에 심각한 위해를 가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매우 팽배해졌기 때문이라 봐야합니다.
허나 HSMC(우한훙신반도체제조)4라는 초대형 사기가 터지고 곳곳에서 정부 주도의 투자가 실패5했다는 신호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열거했던 장점이 어느 정도 퇴색했죠. 또한, 각국에서 더 이상 호락호락하게 인재를 내 주지 않는 상황에 기술적 퀀텀리프를 홀로 일으킬 가능성은 매우 낮아졌습니다.
중국은 자기의 성장률을 까먹으면서, 자기가 가진 현금과 R&D 여력을 하루 하루 까먹으면서 버티는 과정에 서 있습니다.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내기 전에 실탄이 거덜나면 패배하는거고, 찾아내면 살아남는거죠. 죽음의 이지선다입니다.
앞서 언급했듯 시진핑이 얻은 정치적 동력은 ‘미국을 상대로 한 (정신) 승리’에서 기인합니다. 트럼프의 슬로건이 <Make America Great Again>이 미국에서 작동한게 아니라 <Make China Great Again>로 변질되어 시진핑의 권력 근거가 되어버렸죠.
하지만 여전히 성장하지 못하는 경제성장 등 불안 요소가 상존합니다. 특히나 지금은 억눌려있지만, 정치적으로 시진핑 파벌의 힘은 나머지를 모두 찍어누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지 못합니다. 시파의 권력은 결국 강한 중국이라는 성과에서 오는데, 이 성과가 흔들리면 홍콩, 신장위구르, 티벳, 몽고 등 서부전선을 틀어막을 힘이 모두 휘청거릴겁니다. 이웃에서 중국의 혐성질을 봐 왔던 일본과 한국, 심지어 일대일로로 혐성당했던 동남아와 중부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에서도 뼈아픈 청구서가 날아들게 되겠죠.
이렇게 되면 그동안 성장률이라는 버블로 쌓아왔던 베이징의 부동산 거품이 가라앉고, 중국은 다시 10년, 혹은 20년 이상의 과거로 돌아갈 수 밖에 없게 됩니다. 대규모 불황이 중국을 지배하겠죠. 이런 중국을 예측하는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앞으로 미국의 태도와 TSMC의 움직임이라고 예측해봅니다.
미국이 TSMC를 관리6하며 대만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나아가 SMIC의 확장을 막는것이 중국 본토의 힘을 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보는데요. 양안관계가 급격히 중국에 쏠리는 지금, 한정(韓正) 부총리를 통해 케리 람을 위시한 홍콩파와 상해방의 연합체가 미국을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기존 대만 정치세력이 아무리 친중이라 하더라도 일단은 대만 내에서 정치를 하고 있는 이들에게, 중국의 확장 정책 옹호 등으로 여론이 극도로 흉포해진 가운데 TSMC라는 돈줄까지 사라지면 정치적 기반이 모두 사라지는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중국의 현재를 트럼프가 구축했고, 미래는 조그만 섬인 대만이 쥐고 있다는 점이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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