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전의 글에서 의료민영화가 의료보험공단의 민영화 또는 의료법인의 영리법인화 허용 혹은 이 둘 모두를 지칭하는 개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번 글에서는 한국의 건강보험은 도대체 어떤 보험이길래, 모든 사람들이 입을 모아 개혁을 원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개혁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나 살펴보고자 한다.
들어가며
한국의 건강보험 제도와 가장 비슷한 속성을 가진 제도가 하나 있다. 바로 전세다. 갑자기 왜?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정말로 건강보험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전세제도와 매우 비슷한 속성을 가진다
한국에 있는 매우 특이한 제도이며, 이 제도가 제대로 돌아가는 것 또한 한국
처음에 만들어질 때의 이유는 분명히 있었으나, 몇십년이 지나가는 사이에 도대체 이 제도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 알기 어렵게 됨
작동방식은 대단히 단순한 것 같으나 실제로는 너무 많은 이해당사자들이 개입, 아슬아슬한 균형상태에 있음
제도에 아주 약간의 수정이 가해지기만 해도 시장 교란행위로 인식될 수 있음
오늘은 이러한 점에 맞추어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공보험 vs 사보험
소제목을 저렇게 지어놓긴 했지만, 사실 공보험이라는 것은 대한민국을 제외하면 존재하지 않는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공공의료를 확립한 나라, 그 중에서도 특히 선진국인 영국이나 캐나다에 한국의 건강보험에 해당하는 보험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공공의료기 때문에, 모든 의료비는 국민들에게서 세금을 걷어서 충당하고, 의료인들은 공무원이나 공기업 직원이 되는 것이다.
모든 국민이 세금을 어떤 형태로든 내고, 의료서비스 또한 공무원들에게 받는 것이다. 이걸 좀 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바로 ‘무상 의료’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당연히도, 이 시스템도 무상 의료가 아니다. 단지 의료비를 세금으로 먼저 내고, 나중에 적은 돈이나 무료에 가까운 돈으로 내는 ‘선불 의료’에 가깝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사보험은 미국의 제도를 들여다보면 더 들여다 볼 것도 없다. 이 뉴스레터의 제목처럼 무규칙 이종의료보험시장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미국에 사는 사람들 조차도 이 제도 전반을 이해하고 있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분명한 것은, 미국에는 도저히 셀 수 없는 종류의 각종 의료 보험이 있고, 각 의사들이 이 각종 의료보험과 각자 계약해서 각자 계약된 환자들을 진료하는 시스템이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극단적인 자유주의자라 할 지라도, 이 제도에서 이익을 보는 가장 큰 주체는 의사도 환자도 아닌 보험회사라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건강보험은요?
이렇게 놓고 보면, 한국의 건강보험제도가 어떤 제도인지 눈에 보인다. 공보험인듯 공보험아닌 공보험같은 그런 보험이다. 한번 정리 해보자
(건강보험료는) 재산과 소득에 의해 책정, 일괄적으로 원천징수 된다.
누가 봐도 매우 공보험적인 특성이다. 사실상 건강보험료는 세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사실상의 세금으로 인식하고 있다. 놀랍게도 이것은 세간의 인식을 넘어, 은행에서도 확인하는 자료이다. 즉 대한민국에서 건강보험료납부내역은 당신의 소득금액증명원 + 재산세납부내역 과 비슷한 지위를 가지는 자료인 것이다.
(건강보험과) 계약하는 의사는 수가표에 의해 행위에 따른 수가를 지급받는다
처음으로 어려운 개념이 나왔다. 한국의 건강보험수가는 몇몇을 제외하면 행위별수가로 되어있다. 행위별 수가라는 것은, 의사가 하는 행동 하나 하나에 수가가 매겨진다는 것이다.
즉 당신이 병원에서 수액주사를 맞고 온다고 할 때, 실제로 건강보험공단은 ‘오 홍길동씨가 수액을 맞았군, 수가는 2만원일세’ 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수액, 정맥내유지침(주사), 수액세트, 그리고 주사료(주사를 놓는 기술에 대한 비용)등이 모두 다 따로 항목이 있고, 이 항목에 따른 금액을 청구해야만 비용을 모두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행위별 수가제에 반대되는 개념은 포괄수가제가 있는데 이는 다른 글에서 다룰 내용이니 이 정도만 알고 넘어가면 되겠다.
의사는 의료비를 올려받을수도, 내려받을수도 없다.
수가가 정해지게 되면, 건강보험과 계약한 모든 의사는 이 수가에 따른 본인부담금을 환자에게 청구할 수 있다. 더도 덜도 아니고 수가만큼이다.
아마도 수가 보다 더 비싸게 받을 수 없다는 이야기는 이해하기 쉬울 것으로 보인다. 수가보다 비싸게 비용을 받는다면, 건강보험을 존재의의가 없다. 누구나 합리적인 비용으로 진료를 받기 위한 제도인데, 의사가 임의로 더 비싸게 돈을 받을 수 있다면 도대체 이 제도가 왜 존재해야 한단 말인가.
오히려, 수가보다 싸게 받는 것을 통제한다는 이야기를 더 이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아니 의사가 나라가 정해준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생각해서, 더 싸게 받는데, 오히려 더 좋은거 아니에요? 나라가 의사편만 들어서 의사기득권을 챙겨주는거 아닌가요?’ 라고 되 물을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은 정반대다. 의사들에게 할인을 금지시키는 이유는, 의사들이 가격할인을 통해 부당한 환자 유치를 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의료법 제 27조 3의 3항을 잠시 보도록 하자.
누구든지 「국민건강보험법」이나 「의료급여법」에 따른 본인부담금을 면제하거나 할인하는 행위, 금품 등을 제공하거나 불특정 다수인에게 교통편의를 제공하는 행위 등 영리를 목적으로 환자를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에게 소개ㆍ알선ㆍ유인하는 행위 및 이를 사주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는 할 수 있다. <개정 2009. 1. 30., 2010. 1. 18., 2011. 12. 31.>
1. 환자의 경제적 사정 등을 이유로 개별적으로 관할 시장ㆍ군수ㆍ구청장의 사전승인을 받아 환자를 유치하는 행위
2. 「국민건강보험법」 제109조에 따른 가입자나 피부양자가 아닌 외국인(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제외한다)환자를 유치하기 위한 행위
이 조항의 목적 또한 분명하다. 의사들이 환자유치를 명목으로 하는 어떠한 금전적 댓가도 지불할 수 없음을 이 조항은 명시하고 있고, 따라서 이는 환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아야 한다.
이 조항의 예외 단서 두 가지는 이 법을 오독하여 해석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인데, 첫째 조항은 의료보험조차 없거나, 도저히 진료비를 지불받기 어려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어떤 의사가 무료 진료봉사를 생각한 경우에, 이것을 지자체장에게 허가 받으면 처벌받지 않는다는 조항이다. 즉, 본인이 의료봉사를 하고 싶은 의사들은 법의 제약 없이 얼마든지 가난하고 힘든 이들을 위한 봉사를 할 수있다.
두 번째 조항이 바로 전 글에서 다뤘던 외국인 의료관광객의 유치와 관련된 조항이다. 건강보험을 적용받지 않는 외국 의료관광객의 경우에는, 현재 국가가 금지하는 각종 환자유인행위들의 제한을 적극적으로 해지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건강보험은) 가입자가 보험금을 청구하는 대신, 의사가 대신하는 시스템이다.
청구대행의 문제다. 예전에는 청구대행을 설명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왜냐하면, 청구대행이라는 제도는 한국에만 있는 제도지만, 모든 사람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적응하는 제도라 이 제도를 설명해도 사람들이 잘 이해를 하지 못했다.
이제는 아주 쉽게 설명할 수가 있다. 청구대행이 없는 건강보험은 바로 건강실비보험이다. 청구대행 시스템이 없다면 진료를 받은 환자들은
먼저 수가에 정해진 의료비 전액을 납부한 뒤
실비보험 청구 시스템처럼, 진료비 영수증과 진료내역서 혹은 진료 차트를 첨부하여
건강보험공단에 진료비를 청구해야 한다.
생각만 해도 엄청난 불편함이 예상된다. 상당부분 제도를 잘 몰라서 청구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올 것은 자명한 일이다.
지금은 이 청구대행 제도를 통해서 여러분의 불편한 실비청구 대신 의사들이 한달에 한번 병원에서 진료받은 자료들을 모두 다 보험공단에 보내서 대신 청구를 해 주는 것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실비보험은 만약 환자가 보험 계약과 어긋나는 진료를 받으면, 환자들에게 지급할 보험료를 삭감하여 지급하거나, 지급하지 않는다. 반면 건강보험은 이 금액을 그냥 의사들에게 지급하지 않아 버린다. 요컨대, 청구대행이라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국민을 위해 하지 않아도 되는 서비스를 하는 것인데, 돈까지 손해보게 만들어 놓은 시스템이다. 그래서 의사들이 틈만 나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동네북처럼 비난하는 것이다.
Q. 진짜 의사들은 돈에 미친놈들인가?
의사들이 이 보험제도의 부당함을 성토할 때마다, 많은 국민들이 이 과정을 모르고, 의사들이 돈에 미쳐서 그런다고 화를 내곤 한다.
정말 속상한 일이다. 대한민국에서 의사로 살면, 딱히 돈에 미칠 일이 없다.
물론 좀 이상한 사람들이 있긴 한데, 그 사람들은 보통 보험 진료 같은 일을 하지 않는다. 좀 더 돈이 되는 다른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사실 의사들이 반기는 의료민영화라는 것의 실체는 이 ‘청구대행 폐지’에 가깝다. 청구대행만 폐지해도 의사들은 아마도 건강보험에 대해서 큰 불만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혹시라도 이 글을 읽은 독자들은 의사들이 의료보험에 대해서 불만을 가질때 너무 돈에 미쳐서 그런다는 싸늘한 시선 보다는 공무원들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불평불만쯤으로 이해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그런데 진짜로 이 청구대행이 모든 악의 축일까? 정부는 정말로 이 청구대행을 국민의 눈치가 무서워서 폐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당연하게도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놀랍게도 청구대행 제도는 상당히 괴팍한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 의사 입장에서는 당연히도 불편하고 짜증나는 제도지만 말이다.
청구대행제도는 총 의료비 증가에 대한 유의미한 억제수단이 된다. 주로 삭감은 보험계약에 어긋나는 내용으로 진료를 하는 경우를 포함하는데, 대개의 경우에는 행위를 많이 산정하거나, 약을 많이 처방하거나 하는 등의 비용 증가에 대한 억제책으로 작용한다.
이 제도가 도입된 초창기에는 도저히 삭감방식을 알 수 없었던데다가 청구기준을 정확히 가르쳐주지 않아서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는 등의 혼란이 있었으나, 이제 제도가 정착된 지금에 와서는 생각보다 의사들이 심사평가기준을 어느정도 이해하고, 심사평가기준에 상당부분 맞춰서 진료를 하기 때문에, 큰 병원비의 상승 없이 상당히 표준적인 진료를 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물론 당연하게도 심사평가원도 공기업이기 때문에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을 하거나, 해괴한 방식으로 삭감을 하여 의사들과 마찰을 빚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에는 의료비를 어느정도 이상으로 억제하는 효과도 있다.
문제는 이 청구대행제도에 따라 적정 수준으로 진료를 했을때의 문제다. 대개의 경우에는 큰 문제가 없는데, 환자가 만약 용태가 나빠지거나, 심하게는 사망에 이르는 경우 문제가 되기 시작한다. 의료소송의 문제로 가게 되면, 법원은 심사평가원의 기준을 맞추어 진료하였는지 확인 하는 것이 아니라, 교과서에 따라 진료하였는지를 주로 판단한다.
즉, 교과서나 논문에 나온 내용과 심사평가원의 기준이 다른 경우, 의사들은 둘 중에 하나를 택하여야 한다.
교과서대로 진료하고, 심사평가원의 삭감을 받아들여 돈을 손해보고 형사처벌을 받지 않느냐.
심사평가원의 지침대로 진료하고 돈은 손해보지 않지만 법원의 심판을 받느냐
극단적 예시긴 하지만 의외로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그 어느 누구라도 겪으면 마음의 큰 상처로 남는다. 따라서 청구대행 제도의 폐지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의사들은 적어도 심사평가원의 기준대로 진료를 했을 경우, 의사들의 책임에 대해서 법원이 좀 더 살펴봐 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적어도 진료에 대한 기준이 ‘손해보기 vs 형사처벌받기’ 여서는 안되지 않을까?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한국의 건강보험은 놀랍게도 현재 시중에서 판매되는 실비보험과 굉장히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선택권이 없는 단일 상품이고,
보험료 또한 재산과 소득에 따라 일괄적으로 정해지며,
진료받는 금액에 대해서 얼마가 되었던 감액을 받는 방식으로 지급된다.
그리고 가입자체를 쌍방 모두 거절할 수 없고, 보험료의 납부가 준조세 형식으로 원천징수되며, 또한 보험청구 금액을 공단이 직접 정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공공의료의 형식을 강하게 접미한 제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왜 개혁이 안된다는건데요?
한국의 건강보험은 공보험의 장점과, 사보험의 장점을 골고루 잘 섞어놓은듯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잠깐 언급했지만, 준조세를 넘어 소득과 재산의 증빙자료로까지 활용되는 굉장히 강력한 공공성을 가진 동시에 실제 벌어지는 의료현장은 민간에게 맡기어 운영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 이야기들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모르겠는데 돌아가는 굉장히 이상한 제도’
이러한 제도들은 일종의 카오스 상태기 때문에, 약간의 조정을 거치면 나비효과를 부르게 된다. 정말로 약간의 제도적 변화만으로도 시장에 미치는 충격이 어마어마하다는 이야기다. 일부 보험급여의 조정이나, 어느 수가를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 같은 사소한 문제만으로도 의료시장이 출렁이는데, 예를 들어 보험의 보장성 강화라던가 전반적인 수가체계 개편이나 보험료 산출방식의 변화 같은 제도의 변화는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을 주게 된다는 것이다.
결론
오늘은 건강보험이 왜 이렇게 이상한 제도인지, 도대체 왜 의사들은 이렇게 건강보험제도가 부당하다고 하는 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렇게 이야기 했는데도 아직도 할 이야기가 많이 남았다. 다음 편에는 이 편에서 다루지 못한 또 다른 건강보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